유치원의 모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치원의 모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하나로 통합하는 '유보통합'을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첫걸음을 떼기도 전에 유치원 교사들이 크게 반대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은 자칫 집단행동이라도 벌어져 아이가 피해를 볼까 걱정입니다.

교육부는 지난 5일 2023년 주요 업무 추진 계획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당시에는 오후 8시까지 초등학교 아이들을 돌봐주는 '늘봄학교' 추진 소식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이 업무 추진 계획에는 유보통합을 본격화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습니다. 유보통합은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추진됐지만, 30년이 되어가도록 풀지 못한 숙제입니다. 그만큼 민감하고 해결하기에는 고려할 조건들이 많은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시절부터 30년간 풀지 못한 유보통합…3년 안에 마친다는 정부

유치원(만 3~5세)과 어린이집(만 0~5세)은 비슷한 나이대 유아를 대상으로 운영돼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성격이 다른 기관입니다. 유치원은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의 관리를 받는 유아교육기관으로 분류됩니다. 보건복지부 산하인 어린이집은 보육에 초점을 맞춘 사회복지기관입니다. 적용되는 법률도 다릅니다. 유치원은 유아교육법이, 어린이집은 영유아보육법이 적용됩니다. 서로 다른 기준은 시설 등에서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그런 탓에 유아교육·보육계에서는 아이가 유치원에 가느냐, 어린이집에 가느냐에 따라 학부모 부담금, 교육 여건과 교육 내용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에 비해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내놓은 해결방안은 단계적 통합을 거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어느 한쪽으로 통합이 아닌 양쪽의 장점을 갖춘 제3의 기관(만 0~5세)을 설치한다는 구상입니다. 유보통합추진위원회와 추진단을 꾸려 올해부터 내년까지 유치원과 어린이집 격차를 해소하고 2025년부터 유보통합을 본격 시행할 방침입니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유보통합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유보통합 규탄 집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진 속도는 예상보다 빠를 것으로 보입니다. 교육부는 지난달 29일 추진위와 추진단을 행정예고했는데, 휴일을 제외하면 의견접수 기간이 12월 29·30일과 1월 2·3일로 단 4일에 그쳤습니다. 법률에서 입법예고를 40일 이상 하도록 하는 것에 비해 매우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교원단체들은 비판 성명을 쏟아냈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추진위·추진단 구성을 일방적으로 강행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고 전교조도 "연말과 휴일에 공문을 시행하는 것은 의견을 반영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교육부가 아닌 보건복지부가 추진단장을 맡는 점을 두고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는 "보육을 교육으로 상향평준화하는 만큼 추진단은 교육부 중심으로 이끌어야 한다"며 "다양한 현장에서 여러 차례 유감을 제기했지만, 추진단장이 복지부 인사로 단독 구성됐다"고 지적했습니다. 예산 역시 육아정책연구소에서는 유보통합에 15조원 이상 필요할 것으로 봤지만, 올해 정부 예산안에는 관련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공립 유치원 교사들의 거부감입니다. 유치원 교사는 전문대학 이상의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학위 소지자입니다. 국공립 유치원의 경우 초·중·고등학교 교사와 마찬가지로 임용고시에 합격한 7급 국가직 공무원입니다. 이에 반해 어린이집 보육교사는 학과 전공이나 대학 졸업과 무관하게 학점은행, 기타 교육원 등을 통해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일방통행에 유치원 교사들 '반발'…학부모는 '불안'

이 때문에 국공립 유치원 교사들 사이에서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와 동등해지는 것이 불공평하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서울 소재 유치원에 근무하는 이모(28)씨는 "어렵게 임용고시를 통과해 교사가 됐는데 쉽게 자격증을 받은 보육교사와 같아지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경기 지역 유치원 교사 권모(30)씨도 "임용 통과를 위해 들인 수년간의 노력이 1년이면 받는 자격증과 같게 취급될 것에 가장 많이 화가 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한경DB
서울의 한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이 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한경DB
유치원 교사들도 시위에 나섰습니다. 지난 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는 전교조 유치원 교사들이 유보통합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습니다. 오는 25일에도 유치원 교사들이 모인 '유보통합 반대연대'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교원단체의 반대와 유치원 교사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면서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학부모들도 불안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갈등이 심해지면 태업이나 파업 등으로 아이가 유치원에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거나 급작스럽게 가정 돌봄을 해야 할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맞벌이 엄마 현모(36)씨는 "앞으로도 시위가 계속되고 규모가 점차 커진다면 아이가 유치원을 갈 수 없는 상황도 생길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맞벌이 부부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기에 그런 가능성이 생기는 자체로 스트레스"라고 호소했습니다.

맞벌이 아빠 정모(42)씨는 "교사들도 공무원인 만큼 전면적인 파업까진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교사들이 아이가 아닌 시위에 집중하게 되면 그만큼 교육에 공백이 생길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정책 당사자인 유치원 교사들을 설득하고 적절한 합의점을 찾길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사가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당부했습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