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보안사에서 불법 구금돼 가혹행위 당해 자백
'통혁당 재건위 사건' 故박기래씨, 재심 끝 무죄
박정희 정권 당시 이른바 '통일혁명당 재건' 사건에 연루돼 17년간 옥살이를 한 고(故) 박기래 씨가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2-1부(김길량 진현민 김형진 부장판사)는 27일 고 박기래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적법한 영장 없이 군 보안사로 연행돼 외부와 연락이 차단되고 수사관들에 의해 불법적으로 체포 및 구금당한 상태로 수사를 받았다"며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볼만한 상당한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은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한 뒤 그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검찰 조사에서도 계속된 상태에서 동일한 자백을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고 박기래 씨가 보안사에서 강압적으로 수사받았고, 이때 당한 가혹행위가 법정 진술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하므로 공소사실을 일부 인정한 법정 진술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 위반에 해당하려면 국가의 존립과 안전 및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 있는 경우여야 한다"며 고 박기래 씨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통혁당 사건은 1968년 8월 박정희 정권 당시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북한 지령을 받은 인사들이 통혁당을 결성해 반정부적 활동을 했다는 내용이다.

고 박기래씨는 이 사건으로 기소돼 1975년 4월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이후 1983년에 무기징역, 1990년에 징역 20년으로 다시 감형된 뒤 수감된 지 17년만인 1991년 석가탄신일에 특사로 가석방됐다.

그는 출소 후 통일운동가로 활동하다 2012년 별세했다.

이후 유족이 2018년 12월 재심을 청구했고, 검찰은 재심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애초 이 사건은 8월 선고 예정이었지만 한차례 연기됐다.

재판부는 기록 검토에 시간이 걸렸다며 선고가 늦어진 것에 거듭 사과했다.

유족은 무죄 판결을 환영하며 "이 사건은 보안사가 수사권 없는 민간인을 불법 체포·감금하고 가혹행위 및 회유를 통해 허위자백을 받아낸 대표적 국가폭력 사건"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피맺힌 피고인들과 유족의 명예 회복을 위해, 그리고 더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후속 조치도 신속히 이뤄지길 바란다"면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