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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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레아 사건, 의대생 살인사건 등 데이트 폭력 피해가 사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면서 '안전하게 이별하는 방법'이 온라인에서 공유될 정도다.

12일 경찰청에 따르면 교제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는 2020년 8951명에서 지난해 1만3939명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교제 도중, 혹은 이후까지 상대의 물리적·정서적 폭력에 시달리는 이들은 탈 없이 안전하게 이별할 방법을 고민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안전 이별 방법'에 대한 정보 공유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에게 다른 이용자들은 '주변에 도움 청하기', '몰래 이사하고 연락 끊기', '공공장소에서 이별 통보하기' 등의 조언을 했다.

또한 "큰돈을 빌려 달라고 하라", "씻지 말고 냄새를 풍기는 등 최대한 지저분한 모습을 보여 줘라" 등 상대가 먼저 이별을 고하도록 유도하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했다.

안전 이별이란 스토킹 당하지 않고, 감금당하지 않고, 얻어맞지 않고, 사진이나 동영상 유출 협박에 시달리지 않는 이별로, 자신의 안위와 자존감을 보전하면서 이별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까지 이별로 신변의 위협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건 관련 사건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

지난 6일에는 명문대 의대생 최모씨(25)가 서초구 서초동 강남역 인근 건물 옥상에서 여자 친구에게 흉기를 휘둘러 살해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최 씨는 "헤어지자는 말에 범행을 저질렀다"며 자신의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신상이 공개된 김레아(26)는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그의 어머니까지 중상을 입혔다. 검찰은 교제 관계에서 살인으로 이어진 위험성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올해 1월 특정 중대범죄 신상 공개법 시행 이후 첫 사례다.

올 1월 부산진구 오피스텔에선 20대 여성이 폭행과 스토킹을 일삼은 전 남자친구 옆에서 추락사했고, 지난해 5월 김 모 씨(33)는 서울 금천구 시흥동 상가 지하 주차장에서 자신을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한 전 연인을 흉기로 살해했다. 같은 달 경기도 안산에서는 한 남성이 헤어진 여자 친구를 스토킹하던 중 목을 졸라 살해했다.

교제 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정부의 소극적 대처로 인해 피해자들이 '안전 이별 방법'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자구책을 찾아 나서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경찰대 치안 정책연구소가 발간한 '치안 전망 2024' 보고서는 "교제 폭력은 친밀한 관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폭력 행위라는 점에서 당사자 간 교제 폭력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거나 상대방의 폭력 행사를 수인하는 경우도 상당수 발생한다"며 "이에 따라 교제 폭력 행위가 신고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상당 부분 암수 범죄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렇지만 데이트 폭력은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접근 금지 조치 등을 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가정폭력범죄나 스토킹 범죄가 관련 법에 따라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할 수 있도록 규정했지만, 데이트 폭력을 범죄로 규정한 법안들은 수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2022년 7월 심신장애 상태에서 데이트폭력을 저지른 자에 대해 감형하거나 형법상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하지 않도록 규정하는 '데이트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2020년에는 데이트폭력 예방교육과 피해자 보호 조치 등을 규정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법안들은 소관위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어 오는 29일 국회가 임기를 마침에 따라 폐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트 폭력으로 구속 수사를 받는 피의자 비율도 수년째 1~2%대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데이트 폭력 가해자 1만 3939명 중 구속 수사를 받은 인원은 2.22% 수준인 310명이었다. 이 때문에 교제 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지금보다 강화돼야 하며, 헤어진 연인을 존중하는 인성 교육이 동반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