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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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 살고 있는 A씨는 지난해 배우자와 별거하고 자녀 양육권을 배우자에게 내줬다. 하지만 A씨는 마치 자신이 자녀를 키우는 것처럼 구청 직원을 속여 120만원의 양육수당을 매달 받았다. 지급받은 수당을 모두 유흥비로 탕진하다 결국 보건복지부의 감시망에 적발됐다.

23일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제출받은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적발 현황’에 따르면 2020~2021년 적발된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적발 건수는 12만700건, 적발 금액은 749억7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고보조금 일부는 A씨처럼 개인적으로 수당을 챙기거나 기업에 고용장려금으로 배분되는 등 ‘눈먼 돈’처럼 쓰였다.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은 복지부가 389억3400만원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어 고용노동부(226억200만원) 농림축산식품부(52억2800만원) 여성가족부(27억6100만원) 순이었다. 복지부는 각종 수당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부정 수급 사례가 많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허위 신고로 양육수당을 타내거나, 장애를 가진 부모의 사망을 신고하지 않고 장애수당을 챙긴 경우 등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부정 수급 적발 금액의 95%가 개인의 수당 신청과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고용부는 각종 고용장려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국고보조금을 낭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경기도에 있는 한 중소기업은 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학생을 채용한 뒤 졸업자인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 1000만원가량의 청년추가고용장려금을 지급받았다.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마지막 학기거나 졸업 예정자가 아닌 한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지급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고용부가 적발한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부정 수급 금액만 총 26억7000만원에 이른다.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적발 현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 부처 중에는 국고보조금 통합관리시스템인 ‘e나라도움’에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적발 현황을 입력하지 않은 곳도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현장 감시가 힘들어지면서 자발적으로 부정 수급을 신고하지 않은 곳은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는 설명이다. 복지부의 국고보조금 적발건수는 10만8097건에서 별다른 이유 없이 2020년 5만2643건, 지난해 2만8950건으로 급감했다.

더 큰 문제는 부정 지급한 국고보조금 회수 실적이 미미하다는 것이다. 2020~2021년 국고보조금을 부정 수급한 것이 적발돼 회수한 금액은 196억9300만원으로 전체의 26.3%에 불과했다. 정부 관계자는 “적발된 부정수급자로부터 징수한 ‘과징금’을 ‘회수금액’으로 기록한 곳도 있어 실질적인 회수금액은 더 적다”고 말했다.

국고보조금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관리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고보조금 예산 규모는 국회 확정 예산 기준 2017년 59조6000억원에서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엔 97조9000억원으로 불어났다. 하지만 부정수급자에 대한 처벌과 회수 기준이 모호해 현실 적용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관련법에 따르면 국고보조금을 부정 청구한 자가 문서를 위조하는 등 범죄를 저지른 경우 지원한 보조금의 5배, 목적 외 사용이 적발된 경우엔 3배의 부과금을 징수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 관계자는 “어디까지가 문서 위조고, 목적 외 사용인지 기준이 모호해 제대로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의원은 “회수 현황을 의무적으로 e나라도움에 등록하도록 해 부정 수급 관리 체계가 실시간 확인 시스템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