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씨가 16일 경기 고양경찰서에 인치되면서 언론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연합뉴스
'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씨가 16일 경기 고양경찰서에 인치되면서 언론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연합뉴스
보험금을 노려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이은해(31)와 내연남 조현수(30)에 구속영장이 청구된 가운데 치밀한 보험사기가 수면 아래 가려질 뻔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국민들의 간담을 서늘케 한다.

경찰은 지난 2017년 경기도 가평 계곡에서 사망한 A 씨(사망 당시 39세) 사건을 단순 변사 사고로 사건을 종결했다. 이은해는 A 씨와 혼인 신고 5개월 뒤 그의 명의로 생명보험 4개와 손해보험 2개에 가입했다. 이은해는 남편 사망으로 보험금 총 8억원을 수령하려 했지만 보험사의 거부로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경찰이 단순 사고사로 판단했음에도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이 씨를 가장 먼저 의심했던 사람은 A 보험사 보험사기 특별 조사팀(SIU : special investigation unit)에서 일했던 김홍 씨다. 김 씨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생명보험 계약 기간을 만 55세로 짧게 잡은 점, 보험에 가입한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점, 보험 여러 건의 수익자가 모두 ‘이은해’라고 명시된 점이 사기꾼 유형이었다"고 말했다. 보통은 보험 수익자에 대해 자녀를 염두에 두고 ‘법정상속인’이라고 기재한다고 덧붙였다.

A씨의 사망 추정 시각은 보험이 만료되기 4시간을 앞둔 시점이었다. A씨가 피보험자로 가입한 보험은 미납으로 해지될 뻔한 상황이 지속해서 반복되면서 간신히 계약이 유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이은해가 8억원의 생명 보험금을 청구하자 보험사기, 즉 사고사가 아니라 타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지급을 거절했다. 이후 이은해의 지속적인 민원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은해는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자 직접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제보해 보험사의 만행을 취재해 달라고 요청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당시 제보 메일을 받은 뒤 이은해와 직접 통화까지 했던 '그것이 알고 싶다' 김영태 PD는 지난 12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보통내기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김 PD는 이은해와 여러 차례 통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일단 남편이 사망한 사건인데 당연히 있어야 하는 어떤 슬픔, 안타까움 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면서 "그 사건을 매우 건조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계곡에 놀러 간 사람들이 남편의 지인이 아닌, 본인의 지인들로만 구성돼 있었다는 것도 의아했다. 가장 결정적인 건 너무 건조하게 '제가 내연관계에 있었는데, 그 내연남도 계곡을 같이 갔어요'라고 제보 전화에서 말한 점"이라고 전했다.
가평계곡 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은해 씨.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가평계곡 살인사건의 피의자 이은해 씨. /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2019년 10월 가평경찰서는 이 사건을 단순 변사사건으로 처리했다. 보험업계는 경찰이 초기 내사 단계에서 타살 혐의점을 찾지 못해 종결했으나 이후 보험사가 이은해를 보험사기 혐의로 고발하고 A 씨의 가족, 지인들이 의심스러운 정황을 경찰에 제보하면서 재수사가 진행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2020년 10월 '그것이 알고 싶다' <그날의 마지막 다이빙-가평계곡 익사 사건 미스터리> 편이 방영되며 화제가 됐다. 두 달 후인 2020년 12월 일산 서부서가 재수사를 통해 이은해와 내연남 조현수를 살인 등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 검찰은 추가 수사를 벌여 ‘복어독 살인미수’, ‘용인 낚시터 살인미수’ 사건 등 2건의 추가 범행을 발견했다.

조재빈 인천지검 1차장검사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계곡 살인 외 ‘복어독, 낚시터 살인미수는 검찰이 직접 보완 수사를 하지 않았다면 밝혀낼 수 없었다"며 "이은해 일당이 피해자가 이렇게 스스로 떨어지게 해 죽일 정도의 상황에 이르렀다면 그전에도 비슷한 범행 시도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리에서 수사를 확대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발견한 대포폰 약 30여대를 분석한 결과에서 복어독 살인미수 사건의 주요 정황이 발견됐다. 이은해가 2019년 2월 A 씨에게 복어독을 먹이고 나서 내연남 조현수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를 복원했는데, 당시 이은해가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에는 ‘복어피(독)를 이만큼 넣었는데 왜 안 죽지’라고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와 관련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18일 오전 정례 간담회에서 “최초 가평경찰서가 부검 결과와 통화내역·주변인과 보험관계까지 조사했지만 명확한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내사 종결한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한 달 후 일산경찰서가 재수사를 통해 살인 혐의를 밝혀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어 “검찰과 경찰 모두 각자 역할을 다했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2019년 보험사기로 적발된 인원은 9만3천명, 적발 금액은 8천800억원이다.

주요 보험사는 갈수록 용의주도해지는 보험사기에 대응하고자 SIU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996년 삼성화재가 처음 도입한 SIU에는 경찰 검찰 출신으로 직접 수사에 가담했던 인원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은 △과도한 보험금 설정 △소득 대비 과도한 보험료 지출 △수익자가 사건과 관련된 점 △가입자에게 사건·사고가 잦은 점 △보험 가입 기간 등을 두고 보험사기 여부를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