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으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병찬. / 사진=연합뉴스
스토킹으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김병찬. / 사진=연합뉴스
전 남자친구로부터 스토킹을 당하다 살해당한 30대 여성의 유족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억울함을 토로하는 글을 올린 뒤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동의를 호소했다. 하지만 청원 마감일까지 청와대의 공식 답변 요건을 갖추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국내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리 언니 좀 도와주세요'라는 제목의 글이 수차례 게시됐다. 작성자는 자신을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사건 피해자의 사촌동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살인범은 언니를 1년여간 끈질기게 괴롭혔다. 수시로 언니의 휴대전화를 검사해 자신이 보낸 협박성 메시지를 지우고, 전화기록까지 감시하며 자신의 스토킹 사실을 숨기려 했다"며 "언니는 다시 만나주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에 겁이나서 친구들의 집을 전전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평소 스토커의 협박으로 인해 불안에 떨던 언니는 경찰에 신변 보호 요청을 했으나 지급받은 스마트 워치가 사건 당일 언니의 위치를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다"며 "경찰의 안일한 태도에도 화가 나고, 이 잔인한 범죄자가 적은 형을 구형받아 출소하면 남겨진 우리 가족들의 안전도 보호받을수 없어 겁이 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언니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덜고 남겨진 유족의 안전을 위해 가족들이 국민청원을 올렸다"며 "청원마감일이 크리스마스 이브인데 답변 요건인 20만명에 턱 없이 부족하다. 끔찍한 범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힘을 실어 달라"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러한 유족의 호소에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글이 답변 요건을 갖추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청와대의 공식 답변 요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20만명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유족이 올린 청원은 마감일인 지난 24일 약 6만명 수준의 동의 밖에 얻지 못했다.

유족은 청원에서 "국민 여러분과 같은 보통 사람이기 때문에 내 가족이 살해당할 것이라고는 상상 한 번 해본 적 없었다"며 "이번 ‘스토킹 살해범’ 사건에 끝까지 관심을 가져 주시고, 살인범이 사형 선고를 받는지, 피해자 보호 체계는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함께 지켜봐 주심으로써 변화를 이끌어달라"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를 향해서는 '스토킹 살인범 사형 선고', '경찰 부실대응 책임자 처벌 및 공식 사과', '피해자 보호 체계 개선 약속' 등 3가지 사항을 요청했다.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고 형량을 낮출 고민을 하고 있으며 국가의 신변보호 대상자였던 피해자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경찰의 무능과 허술한 시스템을 문제로 지적한 것.

유족은 "세상에 점점 악행을 저지르는 악마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국민 여러분도 다 느끼시고 계실 것"이라며 "가족을 지키려면 사회가 더 안전해지는 방향으로 변화되어 갈 때까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와 같은 비극은 우리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떠올려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라고 호소했다.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앞서 30대 여성 A 씨는 전 남자친구인 김병찬 씨가 죽이겠다고 협박을 한다며 지난달 7일 경찰에 분리 조치를 요청했다. 경찰은 A 씨를 데이트 폭력 신변보호 대상자로 지정하고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등 보호에 나섰다.

김 씨의 협박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던 A 씨는 사건 발생 전날까지 지인의 집에서 생활한 뒤 혼자 거주하던 오피스텔로 돌아와 변을 당했다. A 씨는 경찰과 통화에서 "아직 전화하거나 찾아오지 않았다"며 "심리적으로 안정된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당일 A 씨는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로 오전 11시 29분과 33분 두 차례 긴급 호출했다. 하지만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11시 35분께 이미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으며 끝내 숨졌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는 지난 16일 피의자 김병찬 씨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보복살인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A 씨의 유족에게 범죄 피해자 긴급 경제적 지원을 결정해 치료비와 장례비를 지급했고, 범죄피해자 구조금도 지원할 예정이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bigze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