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사 전자소송 도입 11년 안착…형사재판은 아직 제자리
"서류 재판 난센스…방어권 보장 차원 전자소송 서둘러야"
[디지털 수사·재판] ①형사사법도 전자소송 개막 가시화

머지않아 민사법정에 이어 형사법정에서도 켜켜이 쌓인 서류 더미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10여년 전 특허·민사재판을 필두로 전자소송 시대가 열렸음에도 제자리걸음을 해온 형사재판에까지 전자소송 도입이 가시화됐기 때문이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사사법 절차에서 전자문서 사용을 의무화한 '형사사법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형사절차전자문서법)은 관계부처나 여야 모두 큰 이견이 없어 연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법이 제정되면 차세대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 구축사업 진행에 맞춰 형사재판에도 순차적으로 전자소송이 도입될 전망이다.

◇ 민사 전자소송 11년전 도입…서류에 갇힌 형사재판
국내에 전자소송이 처음 도입된 것은 2010년이다.

'민사소송 등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민사재판에서부터 전자소송이 시작됐다.

당초 형사재판까지 전자소송을 도입하는 방안이 함께 논의됐다.

하지만 법원을 비롯해 법무부와 검찰, 경찰, 해경 등 여러 관계기관 간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다.

특히 전자문서의 법적 효력을 뒷받침할 원본성 문제부터 이견이 컸다.

형사사건은 민사사건이나 행정사건보다 증거능력을 엄격하게 정의하다 보니 전자화된 증거를 원본과 동일한 증거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 논란이 있었다.

여기에 각종 보안 문제나 수사권 위축, 형사재판법 체계 등을 둘러싼 견해차도 걸림돌이 됐다.

결국 형사재판은 음주운전 등 일부 약식사건에만 전자소송을 도입하는 데 그쳤다.

충분한 기술과 역량을 갖추고도 형사 전자소송 도입이 10년 넘게 미뤄지면서 형사재판은 과거의 비효율적인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변호인이 사건 기록을 열람·복사하려면 며칠을 기다려야 하고, 복사하는 동안 판사는 기록을 볼 수도 없다.

합의부 재판이면 판사들끼리도 기록을 돌려봐야 해 다른 판사가 기록을 보는 동안 무작정 기다려야 한다.

문제는 민감한 사건일수록 재판 기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는 점이다.

단적인 예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사법농단 사건의 경우 검찰 수사기록만 20만쪽에 달한다.

기록 복사에만 2주 이상의 시간이 걸린 것을 고려하면 변호인이나 재판부가 사실상 기록을 다 읽어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됐다.

재판 절차에 따른 물리적 제약으로 피고인의 방어권이 제대로 행사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디지털 수사·재판] ①형사사법도 전자소송 개막 가시화

◇ 민사 전자소송 안착…민사단독 93%·행정·특허 100%
이와 달리 민사재판은 전자소송이 도입된 이후 종이서류가 사라지고 효율성과 투명성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전자소송은 2010년 4월 특허사건을 시작으로 민사·가사·행정, 회생·파산 등으로 범위를 넓혔다.

2015년 시·군 법원 사건까지 전자소송이 도입되면서 현재 형사재판을 제외한 모든 재판 분야에 전자소송이 도입됐다.

전자소송이 자리를 잡으면서 재판 환경도 크게 달라졌다.

과거에는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기록과 서류들을 사건 관계자들이 한장 한장 복사하는 데만 몇 날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판사나 변호사들이 사건을 확인할 때도 책상에 쌓아둔 기록에서 원하는 부분을 찾느라 한참을 뒤적여야 했고 기록을 잃어버릴까 늘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재판 중에도 주심 판사가 사건 기록을 보다가 재판장에게 기록을 넘기면서 돌려보는 것은 예사였다.

이런 불편함은 전자소송 도입으로 대부분 사라졌다.

재판부 구성원이 각자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필요할 때마다 기록을 확인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으로 민사 단독사건은 93%가 전자소송으로 진행됐다.

행정사건이나 특허사건의 본안소송은 100% 전자소송으로 진행되고 있다.

각종 인지액이나 등사비용 등 소송비용도 그만큼 줄어 국민의 재판청구권도 보장받게 됐다.

[디지털 수사·재판] ①형사사법도 전자소송 개막 가시화

◇ 해외에선 형사전자소송 도입 사례 많아
국내와 달리 해외에는 형사 전자소송이 도입한 곳이 많다.

영국은 2016년부터 형사사법 절차의 완전한 전자화를 시행 중이며, 미국은 주마다 독자적 전자제출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독일은 전자문서법 등을 제정해 형사절차 전자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구축해 2018년부터 일부 형사사건에 전자소송을 시행 중이며 2026년부터 전면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또 싱가포르는 기소·수사·영장 집행 기관의 정보가 일원적으로 관리되는 통합 형사전자소송 시스템을 개발해 2015년부터 하급법원 형사사건에서 활용하고 있다.

형사전문 변호사는 "요즘처럼 정보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아직도 종이 서류에만 의존해 소송을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피의자 방어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전자소송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