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없는데 추석이 있을까"…더 짙은 해고·실직의 그늘
"큰 며느리라서 시장도 봐야 하고 차례상도 차려야 하는데 올해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명절상은 꿈도 못 꾸게 생겼지 뭐."

7년 넘게 아시아나 항공기 내부 청소 및 위생관리 등 업무를 해오던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 김하경(58)씨는 추석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지난 5월 11일 해고 이후 100일 넘게 거리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어,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어가기도 힘들다보니 예년처럼 명절에 가족들을 불러 밥 한 끼 먹이는 일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30일 노조에 따르면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 368명 가운데 200여명은 5월 초 무급휴직에 들어갔다.

동의하지 않은 8명은 정리해고됐다.

해고된 이들은 7월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지만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이런 상황에 놓일지 상상도 못 해서 지금도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가족들에게는 명절 쇠기는 힘들 것 같으니 밖에서 간단하게 식사하자고 양해를 구했다"고 했다.

풍족하고 단란한 시간을 보내야 할 추석 명절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수입이 끊긴 이들에게는 씁쓸한 시간이 되고 있다.

"추석이 아니라 당장 내일의 생계가 막막하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대량 정리해고 사태가 발생한 이스타항공 조종사 이모(30대)씨도 추석을 앞두고 시름이 깊어졌다.

이씨는 올해 2월부터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면서 수입이 끊겼다.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면서 대리기사와 배송기사 등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 해지할 적금도 없는 데다 모아둔 돈도 바닥을 드러냈다.

이씨는 "양가에서 아기 맛있는 것 먹이라며 조금씩 돈을 보태주시는 상황이라 찾아뵐 면목이 없다"며 "명절이라 부모님과 처가에 선물을 보내고 싶어도 상황을 아시니 보내드리기도 멋쩍다"고 말했다.

제주항공과 인수·합병(M&A) 무산 이후 재매각을 추진 중인 이스타항공은 이달 초 직원 605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내일이 없는데 추석이 있을까"…더 짙은 해고·실직의 그늘
이씨의 수입이 끊기면서 그의 아내는 최근 돌이 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뒤로하고 예정보다 빠르게 일터로 복귀했다.

부부가 맞벌이해야 겨우 생계를 이어나갈 처지라 아이는 하는 수 없이 어린이집에 맡겼다.

이씨는 "아이한테 뭘 해주고 싶어도 예전처럼 잘 해주지도 못하고, 밥 한 끼도 먹고 싶은 것보단 가격을 생각하게 된다"며 "사소한 것부터 줄이게 됐다"고 말했다.

대형 프랜차이즈 영어학원인 아발론교육에서 셔틀버스를 운행해 온 서모(68)씨는 올해 추석 계획을 묻자 "대책 없다.

돈이 없어서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서씨는 아발론교육이 코로나19 사태로 휴원하면서 올해 2월부터 일감이 끊겼다.

학원 측은 사태가 진정되면 곧 개원할 것이라며 수차례 개원을 미루다 6월 말 갑작스럽게 온라인 교육으로 체제를 전환한다며 차량 운행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했다고 한다.

학원 말만 믿고 운행을 재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서씨는 졸지에 일자리를 잃었다.

서씨는 "아발론교육뿐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 짬짬이 셔틀버스를 운행해오던 다른 학원들도 전부 휴원하면서 수입이 절반 넘게 줄었다"며 "일을 하지 못해도 보험료 같은 고정 지출은 계속되는 처지라 사실상 적자"라고 말했다.

서씨는 "길에 나앉지 않으려고 보험사 대출과 청약예금 대출, 신용대출까지 받을 수 있는 건 전부 받다 보니 2월 말부터 진 빚이 벌써 800만원 가까이 된다"고 했다.

그는 "바라는 게 있다면 빨리 코로나가 종식돼 내년 설에는 형편이 좀 나아지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