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한 대목에 꽂혀 작품 구상…고정 배역 없는 2인극으로 탄생
연극·뮤지컬 무대 넘나드는 연출가 겸 극작가
오세혁 작가 "뮤지컬 '데미안'은 평생 완성해가야 할 작품"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가 인생의 해답을 찾기 위해 쓴 작품입니다.

도저히 인생을 몰라서 쓴 거죠. 제가 사랑하는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고, 관객과 나누고 싶어 뮤지컬로 제작했습니다.

"
요즘 공연계가 주목하는 연출가 겸 극작가 오세혁(40)은 지난 20일 대학로 카페에서 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뮤지컬 '데미안'을 제작한 이유를 이같이 밝혔다.

지난 7일 개막한 작품은 헤르만 헤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선과 악, 음과 양 등 끊임없이 격동하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을 그린다.

오 작가는 왜 이 시기에 고전 '데미안'을 무대에 올렸을까.

그는 "얼마 전까지는 민주주의, 사회주의 등 사회가 강요하는 거대한 생각이나 철학이 있었다.

그래서 저도 세상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3년 전 이제 그런 시대를 넘어 인간 정체성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하던 차에 '데미안'이 생각났다"고 했다.

그는 책을 읽다가 마지막 대목에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전쟁터에 끌려온 젊은 병사들이 똑같은 얼굴로 전투를 벌이다가 죽고 나서야 자기 얼굴로 돌아온다는 구절이었다.

돌아보니 자신도 자기 얼굴로 살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

오세혁 작가 "뮤지컬 '데미안'은 평생 완성해가야 할 작품"
오 작가는 라오스로 첫 해외여행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동행한 다미로 작곡가, 유승현 배우에게 "3년 안에 데미안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고, 마침 비슷한 고민을 하던 둘은 흔쾌히 함께하기로 했다.

그렇게 약속한 지 3년 만에 작품은 남녀 배우들이 모든 배역을 소화하는 캐릭터 프리 2인극으로 탄생했다.

극에서 남녀 배우는 성별과 관계없이 '싱클레어' 또는 '데미안'을 모두 연기한다.

오 작가는 "사람 안에는 여러 얼굴이 있는데 거기에는 남성, 여성의 얼굴도 있고, 그 경계의 얼굴도 있다.

싱클레어는 수많은 얼굴을 만나면서 자기 얼굴을 찾아가는 과정이 보였으면 좋겠고,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만난 여러 얼굴이 합쳐진 존재여서 싱클레어를 위해 여러 얼굴로 나타났으면 했다.

남녀 배우가 상대방 역할을 넘나들면서 연기해야 공연이 완전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며 캐릭터 프리 2인극을 시도한 이유를 밝혔다.

이어 "이틀 전 배우들의 배역이 처음으로 체인지돼 이전 공연에서 싱클레어로서 길을 떠난 전성민 배우가 이제 데미안이 돼 김현진(싱클레어)을 인도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뭉클했다.

하지만 '데미안'은 평생을 완성해가야 할 작품이다"고 덧붙였다.

오세혁 작가 "뮤지컬 '데미안'은 평생 완성해가야 할 작품"
그는 현재 연출가로서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와 '라흐마니노프'를 대학로 무대에서 동시에 선보이고 있다.

'브라더스 까라마조프'는 러시아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원작이다.

그는 왜 요즘 고전에 골몰할까.

"고전에는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적인 모습이 담겨 있어요.

고전이 오랜 세월을 버텨온 힘이죠. 그 속에 담긴 인간의 모습은 다르지만 '데미안'이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고전도 많지만 이상하게 두 작품은 공연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저한테는 이 두 편이 화두인 것 같습니다.

"
연출로서, 작가로서 오세혁의 활동을 보고 있자면 어디서 그런 수많은 아이디어가 샘솟는지 궁금해진다.

그는 "체감하고 경험하고 생각한 만큼만 할 수 있는 사람이다"며 "책, 남의 이야기, 제 경험과 생각 등 무엇이든 공연으로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고, 주변 사람에게 자꾸 얘기한다.

의지와 관심을 갖고 하고 싶다는 주문을 쉴 새 없이 외우면 어떤 식으로든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요즘 그는 자신의 작품이 오르는 공연장을 유독 자주 찾는다.

다양한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란다.

그는 "이상하게 공연을 보고 있으면 내일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고 그저 공연을 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해지고 그 100분이 너무 소중해진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 수많은 사람과 이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시대가 원하는 얼굴들 때문에 자기 표정을 짓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극장에 오셔서 '데미안'과 함께하는 90분만큼은 진짜 자기 얼굴에 대해 생각하고, 하루에 한 번 또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자기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데미안'은 다음 달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