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 배역 없는 '캐릭터 프리극'…4월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
'데미안' 오세혁 작가 "한번쯤은 자기가 원하는 표정 짓자"
젊은 군인 싱클레어가 전쟁터에서 죽어간다.

그때 어둠 속에서 예전의 얼굴을 떠올리는 누군가가 나타난다.

싱클레어는 보이지 않는 얼굴과 대화하며 과거로 여행을 떠난다.

지난 7일 개막한 뮤지컬 '데미안'은 고정된 배역이 없는 2인극이다.

남녀 배우가 성별과 관계없이 '싱클레어' 또는 '데미안'을 연기한다.

최근 대학로에서 유행하는 '젠더 프리 캐스팅'을 넘어서는 조합을 보여준다.

이대웅 연출은 11일 오후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젠더 프리 이상의 개념이 이야기 안에 있다.

남자 역할을 여성이 연기하는 개념이 아니라 한 배우가 배역을 다 소화하는 '캐릭터 프리'다"라고 설명했다.

'데미안' 오세혁 작가 "한번쯤은 자기가 원하는 표정 짓자"
작품은 헤르만 헤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싱클레어가 데미안을 만나 선과 악, 음과 양 등 끊임없이 격동하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 연출은 헤르만 헤세가 작품을 쓸 때 분석심리학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을 만난 일을 상기하며 헤세가 융에 영향을 받아서 쓴 부분이 뭘까 찾아봤다고 했다.

그는 "한 자아 안에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시에 있다고 한다.

싱클레어와 데미안도 사실 아니마(남성 속 여성성)와 아니무스(여성 속 남성성)가 같이 있는 게 아닌가 해서 그런 면에서 자연스럽게 접점을 생각했다"고 했다.

작품은 싱클레어가 설명하기 어려운 자기 내면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는다.

무대에서는 카인과 아벨과의 대화, 나비의 의지, 에바 부인과의 대화 등 원작의 독자가 상상했을 장면들이 구현된다.

오세혁 작가는 관객에게 뭘 전하고 싶냐는 질문에 "3년 전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병사로 끌려온 젊은이들이 저마다 같은 얼굴로 전투를 벌였다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자기 얼굴로 돌아간다는 구절에서 눈물을 흘렸다"며 "국가, 민족, 이념 등 거대한 집단이 바라는 얼굴로 살아가는 게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배우와 관객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자기가 원하는 표정을 짓고 숨을 크게 한번 쉬어보자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데미안' 오세혁 작가 "한번쯤은 자기가 원하는 표정 짓자"
작품이 어렵다는 평가에 대해 오 작가는 "소설 자체가 어렵다기보다 작가가 자신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며 만난 수많은 사람과 자기 마음속 얘기를 다룬 책이어서 시기마다 와 닿는 이야기가 다른 것 같다.

우리 인생이 미완성이기 때문에 완성되기까지는 와 닿는 지점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성별을 지우고서 '데미안'을 읽었다는 배우 정인지는 "'싱클레어는 진정 데미안을 만났을까.

데미안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사실 우리는 싱클레어가 데미안이기도 하고 데미안이 싱클레어이기도 한 그런 성장기를 겪는다.

그래서 역할이 바뀌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4월 26일까지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