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주최로 열린 촛불 1주년 기념대회 ‘촛불은 계속된다’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8일 저녁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 주최로 열린 촛불 1주년 기념대회 ‘촛불은 계속된다’에서 참가자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촛불집회 1주년을 맞은 지난 28일 다시 한 번 대규모 촛불이 켜졌다.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촛불정신’을 되새기고 각오를 다지는 집회가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사회 곳곳의 적폐가 여전하다며, 사회 대개혁을 위해 촛불이 계속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촛불, 다른 구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기록기념위원회’가 이날 광화문광장에서 연 ‘촛불 1주년 대회’에는 주최 측 추산 6만 명이 모였다. ‘역사의 현장에 동참한다’는 소명의식을 말하는 참가자가 많았다. 여중생 참가자 김지은 양(14)은 “평범한 학생일 뿐이지만 촛불 덕분에 위대한 역사에 참여하고,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며 ‘아름다운 역사’가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촛불 시민들이 꿈꾸는 세상이 올 때까지 열심히 활동할 것”이라고도 다짐했다.

주최 측은 촛불의 지속을 주문했다. 박석운 기록기념위 공동대표는 “사회 대개혁은 박근혜·이명박 정권에서 쌓은 적폐를 청산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며 “민주주의 시곗바늘을 제자리로 되돌리고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기 위해 다시 촛불의 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집회 후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할 때는 ‘트럼프 방한 반대’ ‘한·미 군사훈련 반대’ 등의 구호가 나왔다.

같은 시간 여의도공원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축이 된 별도의 ‘촛불파티 2017’이 열렸다. 주최 측 추산 1만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우리는 문 대통령을 지지합니다’ ‘자유없다·받은정당·국민없당’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야당을 비판했다. 집회를 주최한 A씨(32)는 무대에 올라 “광화문 기념행사가 방향이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며 별도 집회를 연 배경을 설명했다.

두 집회는 분위기도 딴판으로 진행됐다. 광화문광장에선 ‘사드 배치 결사 반대’라고 쓴 피켓이 곳곳에 걸렸다. 반면 여의도공원에선 때마침 핼러윈데이를 맞아 호박과 마녀 복장을 한 많은 참가자가 ‘파티’를 자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 가면을 쓴 자원봉사자들이 무대에 오르자 함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참가자 이현우 씨(29)는 “광화문 집회 주최 측이 촛불정신을 호도하고 있다”고 했다. 주모씨(45)도 “촛불을 내세워 밥그릇을 챙기는 민주노총이야말로 수구 좌파”라고 주장했다.

◆너도나도 “숟가락 얹자”

이날 광화문과 여의도 참가자들 간 괴리는 향후 촛불진영이 극복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여러 단체들이 저마다 ‘촛불정신 계승자’를 자처하면서 촛불의 분화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참여연대가 선정한 ‘개혁 100대 과제’에는 ‘양심수 전원 석방’ ‘한·미·일 군사동맹 구축 중단’ 등이 포함됐다. 참여연대는 최근 “100대 과제 중 고작 2%만 해결됐다”며 새 정부의 분발을 촉구하다가 문 대통령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촛불 시민들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는 “자신들만이 촛불을 대변한다는 태도는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이념적으로 기울어진 주장이 나올수록 다수의 보통 시민과 거리가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도 “집회가 일부 집단의 독선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시민사회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극단적인 주장은 다른 쪽의 극단을 자극할 수 있다”며 “시민사회가 선동적 주장보다는 이성적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