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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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촌에서 악착같이 공부했습니다. 능력 있는 인재를 뽑지 않고 오히려 역차별하는 게 말이 됩니까?"

서울의 명문대에 재학 중인 A씨는 최근 지방 이전 공공기관 신규 인력 채용시 지역인재를 의무적으로 30% 뽑아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허탈감이 밀려왔다. 충남에서 나고 자란 A씨는 2011년 상경해 취직 준비를 하고 있다. A씨는 "공기업을 목표로 방학엔 과외를, 학기 중엔 열심히 학점 관리를 했는데 지역인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문이 좁아져 속이 쓰리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19일 국토교통부와 교육부는 공공기관 인력 채용시 해당 시·도 학교 출신 선발 비율을 2022년까지 30%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대학, 전문대, 고교 등 지원자 최종학력 기준 졸업한 학교가 해당 지역에 위치하면 '지역인재'에 속한다. 해당 지역에서 고교를 졸업하더라도 타 지역의 대학을 졸업하는 경우 '지역인재'로 분류되지 않는다.

정부는 권고 사항으로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을 도입했으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 이번에 채용 비율을 '의무화'했다. 내년 18%를 목표치로 잡고 매년 3%포인트씩 올릴 계획이다. 내년 1월부터 109개 공공기관 대상으로 제도 시행을 추진한다.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권 대학가에서는 "역차별"이라며 성토가 잇따랐다. 특히 앞서 출신 지역, 대학과 관계없이 실력과 능력으로 평가한다는 '블라인드 채용' 방침과 맞물려 학생들의 불만이 높았다.

학생들은 "이미 블라인드 채용만으로도 충분히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역인재채용 비율 의무화는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지난 19일 청와대 온라인 청원 게시판에 이 같은 내용의 글을 등록하고 지역인재 채용 의무화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21일 기준 '베스트 청원'으로 올라와 있을 만큼 관심이 높다.

특히 지방 출신 서울권 대학생은 더욱 억울해했다. 명문대생 B씨는 "부모님 지원 없이 비싼 생활비를 감당하며 서울에서 공부했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장학금 받고 지방대에 진학해 집에서 편하게 학교 다녔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지방 출신 서울권 대학 졸업자에 대해선 '채용목표제'를 채택했다. 합격자 가운데 지역인재가 미달될 경우 정원 외로 추가합격 시키겠다는 것이다.

서울권 대학 출신자가 지역인재로 인정될 수 없는 것은 지역불균형 해소 차원에서 '지방대 육성' 취지를 담았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방대를 배려하는 유사 법률안에서도 지역인재의 범위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을 배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작 공공기관들은 난감한 표정이다. 업무 특성상 전문 인력이 필요해도 지역에서는 인력 수급이 사실상 힘들다는 것이다. 지역인재를 채용하더라도 연고지가 아닌 전국에 퍼진 지사에서 근무할 경우, 굳이 지역인재를 뽑는 명분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지만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지역인재 채용 실적이 반영되는 탓에 인사담당자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지방 소재 공공기관 인사담당자 C씨는 "지역에 4년제대가 한 곳뿐"이라며 "인력 수요의 절반은 의사, 약사, 간호사 등 전문인력인데 지역인재 비율 30%를 무슨 수로 맞추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는 인재 채용 대상 지역을 '권역화'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광주·전남, 대전·세종·충남 식으로 묶는 식으로 인접지역 출신 채용도 가능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자체별 입장 조율이 쉽지 않아 이마저도 순탄치 않다. C씨는 "권역화해 채용하려 해도 지자체나 대학 등이 타 지역 응시생 합격자가 늘어나는 것을 반대해 허가가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인력의 질 측면에서 공공기관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있다. 또 다른 지방 공공기관 인사 담당자 D씨 역시 "현실적으로 인력 수요에 맞는 지원자를 뽑아야 하는데 무턱대고 고졸자를 뽑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충원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조아라 한경닷컴 기자 rrang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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