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원대 자산가인 이진학 씨(80)는 상속 계획을 세우느라 골치가 아프다. 위암 수술을 받은 아들이 일찍 사망할 경우 손자 몫의 재산이 제대로 지켜질지 걱정돼서다. 이씨는 아들이 사망하더라도 손자 두 명에게 공평하게 재산이 돌아가도록 은행에서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맺었다. 유언대용신탁을 통하면 아들이 사망했을 때 손자에게 재산이 가도록 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수익자연속신탁을 통해서다.

유언대용신탁은 피상속인이 예금 채권 부동산 등 자산을 금융회사에 맡기고 금융회사는 피상속인이 사망했을 때 계약에 따라 상속 집행을 책임지는 서비스다. 상속 분쟁이 늘면서 ‘어떻게 하면 가족끼리 싸우지 않고 재산을 나눌 것인가’에 대한 자산가들의 관심이 커짐에 따라 유언대용신탁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하나은행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약 2420억원에 이른다.

유언대용신탁의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롭게 상속·증여 방법을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씨처럼 피상속인이 손자와 증손자 등 후대까지 상속인과 상속재산을 정할 수 있다.

손자가 미성년일 경우 금융회사가 특정 방식으로 자산을 관리하다가 성년이 된 뒤 상속하는 등 세부적인 설정이 가능하다. 본인이 병에 걸렸을 경우 사망할 때까지 간병비, 생활비 등을 쓰고 남은 재산이 자녀에게 돌아가도록 계약할 수도 있다. 피상속자 사망 후 적용되는 민법상 상속재산 분할비율이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박한신/김일규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