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장 중이던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은 2006년 11월 중순 어느날 새벽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국내 1위 하·폐수 처리장 운영 업체인 환경시설관리공사 매각 최종 입찰일이었다. 인수 필요성을 묻자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이 회장은 “그렇다면 반드시 해라. 금액도 알아서 써내라”고 했다. 코오롱은 세계 1위 프랑스 물기업인 베올리아를 제치고 인수에 성공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이수영 당시 그룹 전략기획팀장이었다.

이수영 코오롱워터앤에너지 전략사업본부 전무(44·사진)는 30일 코오롱그룹 인사에서 공동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전무에 오른 지 2년 만에 코오롱그룹 내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5명의 대표이사 인사 중 유일한 승진자다.

이 부사장은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삼성에버랜드에서 일하다 미국 유학을 떠났다. 노스웨스턴대 켈로그스쿨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딴 뒤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일하던 중 2003년 코오롱그룹 웰니스 태스크포스(TF)에 영입됐다.

그는 시장 트렌드를 빠르게 파악하고 추진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해 ‘돌격대장’으로 불렸다. 능력과 성과는 고속 승진으로 보상받았다. 차장으로 코오롱에 입사한 지 2년 만에 상무보로 승진, 서른일곱에 임원을 맡았다. 환경시설관리공사를 인수해 코오롱워터앤에너지로 이름을 바꾸고 그룹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추진하는 물사업을 이끌며 ‘물의 여왕’이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이 부사장이 중시하는 것은 현장과 소통이다. 평소 밤 12시 이전에 퇴근하는 날이 거의 없는데도 사무실에 머무는 것은 10시간이 채 되지 않는다. 물사업을 맡으며 “석 달에 한 번 구두 굽을 바꾸겠다는 각오로 뛰겠다”고 약속한 그가 두 달 만에 구두 굽을 갈았다는 일화는 직원들 사이에 ‘전설’로 회자된다.

이 부사장의 활약은 여성 인력을 강조해온 이 회장의 신뢰와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이 회장은 2002년 여성인력할당제를 주요 대기업 중 처음으로 도입했다. 지난 7월 직원들과의 대화에서는 “다양성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힘”이라며 “그룹의 반은 여성 인력으로 채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8~29일 LG그룹 임원 인사에서는 이정애 LG생활건강 상무(49)가 공채 출신 첫 여성 전무로 승진하는 등 여성 임원 4명이 새로 나왔다. 오는 5일 발표할 예정인 삼성그룹 인사에서도 여성 인재들이 전진 배치될 것으로 알려졌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