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K-47 vs M16, 전천후 AK-47·살상력 높인 M16…전장을 지킨 '보병의 분신'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 잊지 못하는 두 개의 번호가 있다. 군번과 총기번호다. 60년 이상을 이어온 남북 대치상황으로 대부분의 한국 남성은 생애 2~3년간은 총기를 끼고 생활해야 했다. 일명 ‘에므왕’이라고 불렸던 M1부터 카빈, 그리고 ‘에무십육’으로 불렸던 M16까지…. 현재는 국산소총 K1과 K2가 주도적 위치를 차지했지만 후방에서는 여전히 M16을 찾아볼 수가 있다.

유도미사일이나 전자동 자주포 등을 앞세운 현대전에서도 적진을 점령하는 병력은 소총을 든 지상군들이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총은 자신의 또 다른 생명이다. 소총의 성능은 병사의 전투력과 군대의 전력으로 직결된다. 그렇기에 각 나라의 군대는 강하고 가볍고 견고한 소총을 만들기 위해 총력을 경주한다. 그 총기 개발의 역사에 길이 남을 두 개의 소총이 있다. 바로 ‘게릴라의 영원한 동반자’ AK-47과 ‘자유세계의 수호자’ M16이다.

◆보병 소총의 개념을 바꾼 ‘돌격소총’

AK-47과 M16을 언급하기 전에 돌격소총(Assault Rifle)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AK-47이나 M16 모두 소총으로 불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돌격소총의 한 종류들이다. 1차 세계대전까지만 해도 보병들의 전투는 서로 참호를 파고 멀리 떨어진 상대의 진지에 총탄을 날리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1898년 독일이 개발한 Gew 98은 1㎞ 밖에서도 우수한 정확도와 살상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투의 방식이 변했다. 전차가 상대를 향해 뛰어들면 보병들도 그에 맞춰 진지로 돌격했다. 멀리 있는 적이 아니라 눈앞에 나타난 적을 상대하게 된 것이다. 독일군은 이런 전격전에 걸맞은 형태의 화기인 MP43(StG44)을 1942년 개발했다. 한 발씩 장전할 필요 없이 많은 총알을 빠르게 발사하고, 10㎏이 넘는 기관총처럼 낑낑대며 들 필요도 없는, 달리는 보병을 위한 소형 기관총이었다. 이 돌격소총이 보병용 총기의 개념을 바꿔놓았다.

◆소련의 야심작, AK-47

비록 2차 세계대전에서 패했지만 무기 개발에 힘쓴 독일군의 모습은 소련군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소련군은 독일군의 MP43이나 미군의 M1 카빈처럼 보병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총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라는 스물두 살짜리 전차 부사관이 총기 설계안을 제출했다. 소련군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전권을 맡겼다. 그렇게 해서 2차 세계대전 후 1947년에 나온 총이 AK-47이다. AK는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Avtomat Kalashnikova)이란 뜻이다.

AK-47의 절대적인 장점은 간편함과 견고함이다. 글을 모르는 병사도 한 시간이면 작동법을 익힐 수 있다. 아프리카의 소년병들도 쉽게 다룬다. 부품이 80여개에 불과해 생산하기도 쉽다. 또한 기계의 정밀성을 역으로 적용해 부품에 여유 공간을 둬 모래먼지나 진흙이 껴도 쏠 수 있도록 했다. 사막이나 극지방에서도 쏠 수 있는 전천후 소총인 것이다.

◆경량 돌격소총의 시대를 연 M16

2차 세계대전까지 미군의 주력 소총은 M1 개런드였다. 연발 기능은 없어도 강한 살상력을 자랑했던 이 총은 2차대전뿐만 아니라 6·25 전쟁에서도 쓰였지만 한 번에 8발만 쏘는 것으로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막아낼 수 없었다. 결국 미군도 새로운 총기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고 차기 총기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M16의 개발자 유진 스토너는 전투병이 아닌 항공기 정비병 출신이었다. 아말라이트라는 항공기 관련 회사에서 일했던 스토너는 1957년 플라스틱과 알루미늄을 적용한 경량 소총 AR-10을 만들었다. 4.37㎏이었던 M1 개런드에 비하면 3.3㎏의 무게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1957년 미군의 주력 총기는 AR-10이 아닌 M1 개런드의 자동소총 버전인 M14로 선정됐다. 경량화에 주력한 나머지 총기 내구성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사격 중에 폭발을 일으키는 모습도 가뜩이나 플라스틱 소재라는 외양에 거부감을 갖고 있던 미군 수뇌부에 불안감을 줬다.

아말라이트사는 그 뒤 AR-10을 AR-15로 업그레이드해 여러 곳에 팔아보려 했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AR-15의 판권은 미국 콜트사에 넘어갔는데 콜트는 우여곡절 끝에 미 공군에 AR-15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AR-15는 1963년 말부터 M16이라는 제식명칭을 부여받아 베트남 전쟁에 투입됐다.

◆베트남전에서 격돌한 AK-47과 M16

베트남전 발발 당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들은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지원받은 AK-47로 무장했다. 여기에 중국이 대량복제한 AK-56도 한몫 거들었다. AK-47은 7.62㎜의 대구경 탄환을 사용했는데 근접전에서 웬만한 나무는 관통할 정도의 파괴력을 발휘했다. 또한 87㎝의 짧은 총신은 숲이 우거진 정글에서도 휴대하기 편했다. 반면 장거리 사격에 장점을 가진 M14는 근접전에서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결국 미군은 1967년 M16을 M14의 후속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M16은 도입 당시 총기를 청소하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소문이 나면서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즉각 사격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총기 고장으로 발사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전에 투입된 미군 병사들이 자신의 소총 대신 전리품으로 노획한 AK-47을 사용하기도 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미군은 결국 크롬 도금 등의 개량을 거쳐 새로운 M16A1을 병사들에게 지급했다. 이 소총은 강한 연속사격 능력으로 베트콩들에게 ‘검은 총’으로 불리며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M16에 쓰인 5.56㎜ 탄환은 AK-47의 7.62㎜ 탄환에 비해 파괴력은 떨어지지만 가벼워 많은 양을 휴대할 수 있는데다 빠르고 곧게 날아갔다. 또한 몸에 탄환이 박히면 파편이 몸속에 흩어져 살상력을 높였다.

돌격소총의 탄생 이후 AK-47이 경량화 자동화를 이끌었다면 M16은 고속화의 개념을 만들었다. 경량화 자동화 고속화는 지금도 현대 보병 화기의 기본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반도에 남은 AK-47과 M16

소련은 서방에 맞서기 위해 자신들이 개발한 AK-47을 공산진영에 보급하기 시작했다. 손쉬운 제작, 단순한 사용, 저렴한 가격으로 AK-47은 게릴라의 동반자, 저항의 상징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여기에 특별한 라이선스 없이도 설계도만 있으면 비공식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혔다. 북한도 1958년부터 소련으로부터 AK-47을 도입해 58식 보총(步銃)이란 이름으로 AK 소총을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는 AK-74를 기본으로 한 88식 보총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M16 또한 베트남전을 계기로 한국군에 2만7000여정이 들어왔다. 한국은 1974년부터 콜트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1985년까지 약 60만정을 자체 생산했다. 지금은 한국군에 K1, K2 소총이 보급돼 있지만 이 또한 개발 과정에서 M16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냉전시대 총기 개발의 역사는 한반도의 분단 상황에서 깊게 관여돼 있다.

◆AK-47이 불러온 역사의 비극

공식 비공식을 합해 전 세계에 뿌려진 AK-47의 숫자는 1억정 이상이다. 심지어 총기류가 흔한 아프리카에서는 닭 한 마리와 바꿀 수 있을 정도다. 간단하게 쓸 수 있다는 점은 누구나 총을 들게 만들었고 그 결과 7~8세의 소년, 소녀도 사람을 죽이는 일에 동원되고 말았다. ‘역사를 바꾼 총 AK47’의 저자 마쓰모토 진이치는 그의 책에서 현대전 최고의 잔혹을 기록했던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내전으로 1만5000명이 넘는 소년소녀 병사가 생겼고, 10만여명의 사망자, 2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전차나 미사일 없이도 AK-47이란 총 한 자루에 소규모 국가단위의 인구가 사라졌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AK-47의 개발자인 칼라시니코프는 이 같은 비판에 “많은 사람들에게 비극이 일어난 것은 슬픈 일이지만 그것은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라며 “나는 나치 독일로부터 조국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무기란 없다. 누군가를 지키려면 다른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것이 전쟁의 생리 아니겠는가. 그것은 AK-47과 M16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무기들이 안고 있는 짐일 것이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