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우 박사, 사랑과 기부 남기고 하늘로…
시각장애인으로 한국계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백악관 차관보 직급까지 올랐던 강영우 박사가 23일(현지시간) 별세했다. 강 박사의 가족은 이날 “장애인 인권운동의 선구자인 강 박사가 오늘 투병 중이던 암으로 소천했다”고 밝혔다. 향년 68세.

강 박사는 14세 때 얼굴에 축구공을 맞아 시력을 잃었다. 아버지는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아들의 실명 소식에 뇌일혈로 쓰러졌다. 믿고 따르던 누나마저 얼마 후 숨져 고아가 됐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1972년 연세대를 졸업한 뒤 미국 피츠버그대로 유학가 한국 최초의 시각장애인 교육학 박사가 됐다. 그는 훗날 “당시 눈을 고쳐달라는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셨다면 공부를 하지 않고 공장에 취직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강 박사는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임명으로 상원 인준을 거쳐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로 선임됐다. 정책차관보로 6년간 일하면서 미국의 5400만 장애인을 대변하는 직무를 수행했다. 장애인들의 자립과 권리 증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최근까지도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겸 루스벨트재단 고문으로 활동해왔다.

하지만 강 박사는 지난해 10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족들과 함께 주변을 정리해왔다. 성탄절을 이틀 앞둔 작년 12월23일 “누구보다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살아 온 제가 이렇게 주변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작별인사를 할 시간을 허락받아 감사하다”는 내용의 작별 편지를 언론에 보내기도 했다.

지난 1월에는 아들들과 함께 국제로터리재단 평화센터 평화장학금으로 25만달러를 기부해 훈훈한 감동을 줬다. 그는 1월9일 감사 행사를 열고 “제 삶을 여기까지 이끌어주고 지탱해 준 힘인 사랑에 빚을 갚으려 한다”며 “이 기부는 세상에 진 채무를 변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 박사는 국제로터리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에서 유학할 수 있었다.

강 박사는 부인 석은옥 여사와 함께 아들 둘을 뒀다. 큰아들 진석씨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안과전문의로 워싱턴 지역 안과협회장을 맡고 있다. 둘째 아들 진영씨는 듀크대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백악관에서 선임 법률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장례식은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의 한인 중앙장로교회에서 오는 3월4일 추도 예배로 치러진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