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재계를 주도하는 국제상사중재협회(ICCA) 회의에 2004년 처음으로 참석했을 때만 해도 협회 위원들은 '구름 위의 사람들' 같았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협회 위원이 된 이후 1년 만에 사무총장으로 선임됐습니다. 처음부터 '아시아권에서 국제중재는 우리가 주도해야겠다'는 무모하고 황당한 꿈을 품은 게 그 비결이라면 비결이랄까요. "

지난달 23일 브라질에서 열린 국제상사중재협회 연례총회에서 사무총장으로 뽑힌 김갑유 변호사(48 · 사진)는 국제중재계에서 '한국 최초'를 달고 다닌 국제중재 전문가다.

2002년 국내 처음으로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국제중재팀을 꾸렸을 때만 해도 주변에서는 그의 도전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국제분쟁을 법적 공방이 아닌 국제중재로 해결하려는 기업들도 늘어났다. 중재인의 중재와 판정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는 국제중재는 법정 투쟁보다 소요 시간이 비교적 짧고 분쟁 내용의 보안이 유지되는 등의 장점이 있어 기업이 선호하는 편이다.

김 변호사는 지난해 6월 '너무 젊다'는 우려를 불식하고 협회 사상 최연소 위원이자 한국인 최초의 위원으로 선임됐다. 절차,규칙,법규 등 국제중재의 기준을 확립하며 국제중재계의 유엔과 같은 역할을 하는 협회 위원 35명 중 한 명이 된다는 건 전문가들 사이에서 '명예의 전당' 입성으로 통한다. 그리고 1년도 되지 않아 '막내'인 그는 "평균 연령 60~70대 위원들이 대부분인 협회를 젊게 쇄신하자"는 얀 폴슨 회장의 제안을 받고,위원들의 만장일치로 협회를 주도하는 사무총장직을 맡게 됐다.

명예의 전당 입성 1년 만에 그 중심에 선 셈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개인적인 능력뿐 아니라 우리 법조계의 국제중재 역량이 발전하면서 그 위상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변호사의 분석이다. 최근에는 한국 전문가를 의장중재인으로 세우는 경우도 부쩍 늘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백인 중심이었던 협회에서 아시아인이 사무총장을 맡은 것은 처음입니다. 세계적인 국제중재 전문가 중에도 아시아인은 많지 않습니다. 인정받는 한국인 전문가는 10명이 채 안 됩니다. 인종 차별까지는 아니지만 소수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해요. 그래서 한글 등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려고 따로 공부를 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지식이 쌓이더군요. "

김 변호사는 "전 세계 시장을 누비는 한국 기업과 함께 변호사도 해외에 진출해야 한다"며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국제중재 등 법률적 지원은 필수"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8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 변호사로 일해 왔다. 세계 3대 국제중재기구인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법원 상임위원,런던국제중재법원(LCIA) 상임위원,미국중재협회(AAA) 한국인 최초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