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에는 실장 직함을 가진 공무원이 4명 있다. 그 중 최고참이 박미란씨(46)다. 1급인 세제실장 기획관리실장과 3급인 장관 비서실장이 있지만 이들은 올초 인사때서야 실장 타이틀을 붙인 '신참'들이다. 박씨는 직급은 6급이지만 실장 직함만 벌써 26년째다. 다름 아닌 '기자실장'.물론 비공식 직함이다. 많을 땐 1백명이 넘는 재경부 출입기자들의 뒷바라지를 책임지고 있는 미혼녀. 정부의 언론개혁 방침에 따라 오는 9월 문을 닫게 될 재경부 기자실의 산증인인 그를 만나봤다. "처음 경제기획원 기자실에 왔을 때 당시 장관님이 남덕우 부총리였어요.그 분은 말소리가 너무 작아 마이크를 설치할 때마다 신경이 많이 쓰였던 기억이 나네요." 1976년 은광여고를 졸업한 다음 모 제약회사에서 잠깐 근무하다 이듬해인 77년부터 기자실 근무를 해왔다. 그녀를 거쳐간 장관만도 28명(김진표 현 장관 포함)에 이르고 그녀가 보살폈던(?) 기자들은 족히 2천명은 넘는다. 그래서 그녀를 모르는 경제기자는 간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언론사 편집국장이나 경제부장 대부분이 나를 거쳐간 분들"이라며 그녀는 활짝 웃는다. "요즘 기자들요.한마디로 불쌍해요.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만 하는 기계들이에요.90년대 초까지만해도 차장급 기자들이 많았고,나이도 30대 후반,40대 초반들이었고요.그래선지 여유도 있었고 정(情)도 많았는데 요즘은 많이 삭막해졌어요." 기자들의 일하는 스타일은 어떻게 변했을까. "대신 그 때는 한번 물면 놓지 않는 근성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특종을 터뜨리면 2보,3보 계속 후속기사를 만들어내는 짜릿한 긴장감이랄까 스릴 같은 것이 있었어요. 요새는…글쎄.말하기 곤란한데요….호호." 장·차관 등 고위 인사들과 일선기자들이 토론하고 논쟁하며 격돌하는 기자실을 오랜 세월 동안 지키다 보니 자연스레 세상의 흐름을 꿰뚫는 눈도 생겼다. "핵심을 짚어 말하는데는 진념 장관께서 일가견이 있으셨어요.어떤 장관은 곰바우라는 별명으로 불렸고….그런데 이런 말 해도 되나"라며 그녀는 화제를 얼른 기자들로 옮겼다. "신 모 기자는 보고서를 한번 곁눈질하면 사진을 찍은듯 기억해 내는 비상한 능력이 있었어요.나중에 그분의 따님이 여기 출입기자로 왔는데 아빠의 옛날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래요'라며 깜짝 놀라더군요.또 어떤 기자는 유달리 주머니가 큰 옷을 입고 다녔는데 특종을 많이 했어요.그 주머니가 서류를 훔치기 위한 것인지 어떤지는 나도 모르지만….호호.어떻든 다들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들이죠." "촌지요? 옛날에는 은행장들이 두툼한 돈 가방을 들고왔던 때도 있었다고 해요(그녀는 이부분을 남의 말하듯 했다). 다 없어졌어요.YS때 기획원과 재무부를 통합한 다음에는 싹 없어졌어요." 그녀는 과천청사의 내로라하는 '스포츠 우먼'이다. "등산부터 시작했는데요. 암벽등반,스키,수상스키,스킨 스쿠버,견지 낚시 등으로 발전했죠.운동이 재미있어요.인라인 스케이트 타려면 박 기자도 조심하세요.저처럼 발 절고 다니지 말고요." 기자들과 부대끼며 지내다 세월가는 것을 잊다보니 그녀 말대로 '제 발등 찍는 줄' 모르고 혼기를 놓쳤다. "기자실의 생동감 있는 분위기가 좋아요.정년까지 기자실에서 일하면서 출입기자들을 돕는게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박 실장은 오는 10월 새로 문을 열게 되는 과천 5개부처 통합 브리핑실에서도 여전히 기자들을 만날 것이다. 글=박수진 기자 park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