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9시 50분 대구지하철 1호선 1079호 전동차(기관차 최정환)는 반월당역을 출발, 대구시내 한복판인 중앙로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전동차의 객차 의자에 앉은 승객은 책장을 넘기거나 눈을 붙이고 있었고 또다른 승객들은 저마다의 하루 일과를 구상하며 감상에 젖어 있어 객실내에는 차량 소음을제외하곤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이어 3-4분 뒤 전동차가 중앙로역 플랫폼으로 들어서는 순간 감색 체육복을 입은 김모(56.대구시 서구 내당동)씨가 검정 가방에서 시민들이 흔히 먹는 녹색 플라스틱 우유통을 꺼내 그 입구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김씨 옆에 있던 박금태(37.남구 대명동)씨 등 승객 3-4명은 장난을 하는 것으로보고 "구내에서 위험하니 불을 꺼라"고 했으나 김씨가 말을 듣지 않았다. 박씨 등 승객들은 격투까지 벌였으나 김씨는 이들의 제지를 뿌리치고 갑자기 우유통에 가득찬 시너로 추정되는 인화성물질을 의자에 뿌린 뒤 손에 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불이 나자 지하철 구내에는 자동으로 전기공급이 끊기면서 암흑천지로 변했으며출입문도 닫혔다. 특히 전동차의 객차에는 스프링클러 시설이 없어 삽시간에 불길이 번져 객차에는 유독성 검은 연기가 가득찼으며, 승객들의 고함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이면서 열차는 아비규환 상태에 빠졌다. 생사의 기로에 선 승객들은 비상구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으며 노약자등 일부 승객들은 연기에 질식해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끝내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불이 난 뒤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긴급 출동했지만 유독성 연기로 인해 3시간 가까이 현장 진입을 하지 못해 재난은 더욱 커졌으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부상자 가운데서도 의식불명 등 위독한 사람이 많아 사망자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화재가 나자 시커먼 연기에 놀란 도심상가 상인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대부분 철시를 하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화재 소식이 알려지자 현장에는 가족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는 시민들이 크게몰렸으며 지하철 운행 중단과 중앙로 등 시내 도로가 통제돼 대구 전역의 교통이 마비되고 있다. 각 직장에서도 일손을 놓고 방송을 통해 중계되는 현장상황을 지켜보며 가족과 친지들의 안부를 확인하느라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병원에서 다리 등에 화상을 입고 치료를 받던 방화 용의자 김씨를 검거해 범행 동기 등을 조사 중이다. (대구=연합뉴스) 문성규기자 moonsk@yonha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