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땅을 보상도 안해주고 공공용지로 사용해도 됩니까"

사유지를 무상으로 쓰다가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에서 패소한 서울시가
뒤늦게 문제의 땅을 사들이기로 했다.

무사안일한 행정의 표본으로 꼽힌 문제의 땅은 중구 을지로 2가 181의3
일대 외환은행 본점 옆에 있는 5백80여평.

외환은행 소유인 이 땅은 지난 77년 도로로 도시계획시설이 결정됐으나
그동안 시가 토지보상을 하지 않고 공공시설로 써왔다.

이에따라 땅 소유주인 외환은행은 그동안 수차례 보상을 요구하다가 지난
93년 서울시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올라간 이 소송은 지방자치법 시행일인 88년 5월1일 이전
사용료는 서울시가, 이후 사용료는 중구가 각각 외환은행에 지급하라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이러자 부담이 크게 준 서울시는 이전 사용료 6천2백만원을 지급하고 손을
뗐지만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중구는 서울시의 행정 착오가 가장 큰
원인이라며 지급을 미루고 버팅기는 상태다.

이에따라 외환은행은 지난 96년 8월 중구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해 20일 1심판결에서 승소했다.

지난해 8월말부터 과거 5년동안 사용료 44억9천만원을 중구청이
외환은행에 지급해야 한다는 게 이날 판결의 요지.

이같이 판결이 나고 중구에서도 서울시 방침에 불만을 터뜨리자 뒤늦게
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차원에서 이 땅을 사들이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당장 사들인다고 해서 도로를 개설할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명동을 보행자 중심의 거리로 만드는 방안과 맞물려 활용계획을 세울 것"
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도와 차도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출입구 등 공공시설이
들어서 있는 이 땅은 도시계획시설(도로)로 묶여 있지만 도심 가운데 있어
토지보상비가 수백원억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가 이 땅을 사들이더라도 중구는 부담이득금 45억원을
외환은행에 지급할 수 밖에 없다.

이에대해 중구 관계자는 "시가 땅을 사들인다는 방침은 환영하지만 시
행정착오로 시작된 일인만큼 사용료를 시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구와 시간의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 김준현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3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