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급매물을 알리는 안내문이 내걸려 있다.  /김범준 기자
서울 잠실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급매물을 알리는 안내문이 내걸려 있다. /김범준 기자
'강남 불패'라는 인식마저 흔들리는 것일까요. 가팔라진 금리 인상에 부동산 시장 둔화 전망이 확산하면서 강남에서도 수억원씩 집 값이 떨어진 사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이른바 '대장 아파트'인 잠실엘스가 대표적입니다. 국민평형이라고 불리는 전용면적 84㎡ 기준 아파트가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20억원 밑으로 호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협상 가능한 가격으로 19억5000만원대에 아파트 매물(1층)이 나와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10월 만 해도 27억원에 최고가 매매가 이뤄졌던 아파트입니다. 올 3월에는 24층이 26억7000만원에 매매 거래가 실제 체결됐고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고 주택 거래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올 4월엔 23억~24억원대(10~18층), 6월엔 22억~24억원대(1~11층)에 실제 매매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강남권 대표 대단지 아파트인 헬리오시티 역시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20억원 마지노선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초에 이미 10층 매물이 20억9000만원에 실제 거래가 완료됐습니다. 올 초엔 직거래이긴 하지만 19억1000만원(1층)에 실제 거래가 이뤄진 적이 있고요. 지난해 10월엔 최고가 23억8000만원에 거래가 됐던 단지입니다.
"이거 실화냐"…27억 찍었던 잠실엘스, 매물 가격에 '술렁' [김은정의 클릭 부동산]
호가 뿐 아니라 실제 거래 가격이 계속 내림세를 띠자 주민들을 중심으로 거래 사유를 파악하는 일들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두건의 특이 사례가 전체 단지 가격 형성이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에섭니다. 업계 관계자는 "세금, 부채, 사업 자금, 금융 부담, 경매 등 다양한 이유들로 시세 보다 수 억원씩 낮은 가격에 아파트 매물들이 나오고 있다"며 "이같은 매물을 통상적인 시세로 여기긴 어렵지만 부동산 전망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만큼 실수요자들이나 거래 시장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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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을 비롯한 서울 곳곳에서 집 값 하락 사례가 나타나고 있지만 거래는 살아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7월 서울 아파트거래량은 639건으로, 2006년 1월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나타냈습니다.

올 8월 아파트 거래량도 300건을 밑돌고 있습니다. 서울 아파트 월 거래량이 1000건을 밑돈 건 지난 2월 이후 두 번째입니다. 금리 인상과 집값 고점 인식 확산으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올 2월 820건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이후 3월 대통령선거와 이에 따른 부동산 규제 완화 기대가 반영되면서 일시적으로 거래량은 회복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고 이에 따른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거래 절벽이 지역을 가리지 않고 심화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3만7000여 가구가 몰려 있는 용산에선 올 8월 한 달간 고작 2건의 매매가 이뤄진 게 대표적입니다. 마포구와 서초구 거래량도 각각 7건에 그쳤습니다.

부동산 정보업체 경제만랩이 법원 등기정보광장의 생애 첫 부동산(집합건물·토지·건물) 매수자를 집계한 결과 올 들어(1~7월) 전국 부동산 생애 첫 매수자는 26만7066명으로 지난해(42만8789명)에 비해 37.7% 감소했습니다. 2010년 관련 통계가 공개되기 시작한 이후 가장 적은 수치이기도 합니다.

다만 부동산 시장 관계자들은 급격한 집 값 하락이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금리 인상이 이어지는 동안에 일시적인 집 값 조정과 거래 절벽이 나타나겠지만 폭락 수준의 급격한 하락은 쉽지 않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현재는 급매물을 처분하고 싶어도 집 값이 더 내려갈 것이라고 여기는 실수요자들이 많아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도 "몇 년간 급격하게 오른 집 값이 일시적으로 조정을 받을 순 있지만 정부가 각종 규제를 더 완화하고 매수 심리가 살아나기 시작하면 인기 지역을 중심으로 집 값 방어 현상이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