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열풍 불던 1기 신도시
분담금·이주비 부담에 '화들짝'
평촌신도시 무궁화경남에 리모델링 추진위원회와 반대 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평촌신도시 무궁화경남에 리모델링 추진위원회와 반대 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돈만 약간 내면 새 집이 되고 가격도 오른다기에 리모델링에 찬성했습니다. 헌데 다른 주민 말을 듣고 하나씩 따져보니 멀쩡한 집만 빼앗기겠더라구요. 추진위에서 동의서 돌려받고 리모델링 반대하기로 했습니다."
경기도 안양 평촌 일대로 번졌던 1기 신도시 리모델링 바람이 힘을 잃고 있다. 집값 상승 등으로 리모델링 사업이 야심차게 추진됐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는 평가다. 리모델링 반대로 돌아섰다는 무궁화경남 주민 A씨는 "이미 두 번이나 방문했는데 추진위가 여러 핑계를 대며 동의서를 돌려주지 않았다. 다음엔 경찰을 대동하고 찾아갈 예정"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27일 안양시와 정비 업계에 따르면 평촌신도시에서 23개 단지가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다만 조합 설립에 성공한 단지는 목련 2, 3단지와 초원세경 등 3개 단지에 그친다. 일부 단지에서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평촌학원가를 끼고 있는 무궁화경남(590가구)에서는 리모델링을 두고 주민 간의 이견이 벌어지고 있다. 분담금과 이주비 부담이 주된 이유다. 리모델링 추진위원회는 리모델링을 통해 낡은 아파트를 새 아파트로 바꾸고 주차공간도 확충하자며 동의서를 받고 있다. 88가구를 일반분양으로 자금을 충당하는 만큼, 세대당 약 2억1000만원의 분담금만 내면 된다는 주장이다.
평촌신도시 무궁화경남 단지 입구에 리모델링 추진위원회가 천막을 세우고 동의서를 걷고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평촌신도시 무궁화경남 단지 입구에 리모델링 추진위원회가 천막을 세우고 동의서를 걷고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반대 주민들은 분담금과 이주비를 마련할 방법이 마땅치 않고, 수익성도 낮다고 반박한다. 일반분양 대금은 입주 후에나 정산되는 것이기에 가구당 분담금은 3억5000만원 수준이라는 것. 인근 지역에 전셋집까지 구하려면 8억원 넘는 자금이 필요한데, 이미 은퇴한 주민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라는 설명이다. 또 분담금과 전세자금 대출 이자 만큼의 가치 상승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라는 반응이다.

리모델링 조합을 설립하려면 주민 3분의 2(66.7%)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리모델링 추진위는 약 50%의 동의를, 반대 주민들은 30%의 반대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찬성하는 주민들이 많긴 하지만, 약 3.4%의 주민이 더 반대한다면 리모델링 추진이 무산될 상황인 것. 전체 가구 수를 감안하면 약 20가구 남짓이다. 리모델링이 강행되려면 약 99가구(16.7%)가 추가로 찬성해야 한다.

1990년대 초반 입주한 1기 신도시 아파트는 노후화로 인해 정비 사업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1기 신도시는 평균 용적률이 169~226% 수준으로 높아 재건축보다는 수평·별동증축 리모델링 위주로 논의가 이뤄져 왔다.

수평·별동증축 리모델링은 비교적 손쉽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지만, 기존 아파트의 내력벽(아파트 무게를 지탱하는 벽)을 유지해야 하기에 설계가 제한적이다. 재건축과 달리 일반분양 물량이 기존 가구 수의 15%로 제한되기에 조합원 분담금이 늘어나며, 이주비도 각 조합원이 마련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금리가 오르고 집값은 주춤하고 있다는 것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분담금과 이주비 등의 대출이자 부담은 커질 전망인데, 집값 상승세가 꺾인다면 결과적으로 기대 수익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내력벽 때문에 최근 재건축 시장에서 유행하는 고급화 설계를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가치 상승에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정비 업계 관계자는 "통상 3040세대는 분담금을 내더라도 빠른 사업이 가능한 리모델링을 선호하지만, 고정 수입이 끊긴 50대 이상 중장년층은 분담금 조달과 이자 부담에 민감한 모습을 보인다"며 "리모델링이 확정되면 분담금과 이주비를 내지 못하는 이들은 집을 팔고 나가야 한다. 전국적으로 오른 집값이나 세금 등을 감안하면 지금과 비슷한 집도 구하기 어렵기에 리모델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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