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대상으로 기습적인 개인정보보호법 준수 실태 조사에 나서면서 분양 마케팅에 비상이 걸렸다.

상당수 건설사는 현장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례가 적발돼 바로 과태료를 물거나 시정 요구를 받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모델하우스에서 고객 동의 없이 임의로 수집한 전화번호 주소 등 개인정보를 활용해 집을 파는 분양 마케팅의 특성상 개인정보보호법을 지키는 사업장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청약·대출규제에 이어 개인정보보호 단속까지 시작돼 분양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정부, 모델하우스 기습 단속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행정자치부와 국토교통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합동으로 지난 6일부터 분양 중인 아파트 모델하우스 현장을 찾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정부가 모델하우스를 대상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준수 여부를 점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선 합동단속반이 8일 갑자기 방문해 건설회사와 분양대행사, 모델하우스 상담사 등을 대상으로 불법 개인정보 수집 및 활용 여부를 집중 조사했다.

현장에 있던 상담사 A씨는 “주로 고객으로부터 개인정보 수집 동의를 받았는지, 수집한 개인정보를 PC나 이메일을 통해 송·수신했는지, 계약서 보관은 안전하게 하고 있는지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고 전했다.

정부 단속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건설사 분양소장은 단속을 피해 하루 종일 모델하우스를 비웠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개인정보보호 규정을 100% 지키는 건 불가능하다”며 “피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 따라 전국 모델하우스 소장들에게 당분간 모델하우스에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위법 사항 적발도 잇따랐다. 한 대형 건설사는 동의 없이 고객 정보를 수집한 사실이 적발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개인정보가 담긴 서류의 폐기 시점을 계약 개시일 기준으로 3개월 또는 6개월 등 구체적인 기간으로 명시하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개인정보 유출 만연

정부의 이번 단속은 건설 현장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례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분양대행사들은 모델하우스에서 고객 동의를 받지 않고 이름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를 수집한다. 미계약분이 발생하면 모델하우스 방문객에게 전화를 걸어 매입을 권유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수집한 정보가 인근 중개업소에 무차별적으로 유출되는 일도 다반사다. 지난해 서울 마포구 아파트에 당첨된 김모씨(38)는 “당첨자 발표가 나자마자 인근 공인중개업소에서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고 연락이 쏟아졌다”며 “단지명은 물론이고 동·호수까지 알고 있어 몹시 불쾌했다”고 말했다.

현행 주택법 55조에 따르면 주택을 공급받으려는 사람의 입주자 자격을 확인하기 위해 주택사업 시행사가 개인정보를 요청할 수 있지만 해당 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타인 및 다른 기관에 제공하거나 누설해서는 안 된다.

개인정보는 주로 분양 대행사나 주택사업 시행자, 모델하우스 직원을 통해 유출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분양대행사나 모델하우스 상담사는 이전에 맡았던 사업장에서 얻은 개인정보를 후속 사업장 마케팅에 활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건설사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 대부분이 청약 관련 접수와 상담, 관리를 위해 분양대행업체에 용역을 주고 있다”며 “계약이 끝난 이들이 개인정보를 갖고 나와 거래하면 위법 행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시공사 선정과정에서도 재개발·재건축 조합원 정보가 무차별적으로 유출되고 있다”며 “원치않는 시공사 전화공세에 피해를 입고 있는 이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