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 땅은 뭐로 채우나
[혁신도시 새판 짜자] (3)선물인가 재앙인가 … 행정청사 부지 1%도 안돼

행정중심복합도시(이하 세종시)는 철저히 외면받고 있었다. 서울대 시설관리국장은 단과대라도 이전할 수 없느냐고 묻자 "턱도 없는 소리"라고 못박았다. 2007년 세종시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고려대 관계자는 "위험하다"고 표현했다. 충남 공주 · 연기군에 조성 중인 '제2의 서울'에 들어가는 일에 대해 말이다.

대학이 이러하니 경제 논리대로 움직이는 기업이 세종시에 관심을 가질 리 없다. 발광다이오드(LED),2차 전지 등 한창 뜨는 산업을 유치하려고 해도 삼성 등 주요 기업들은 전혀 관심이 없다. 수원에 삼성타운을 갖고 있는 삼성그룹은 "검토도 안 해 봤다"고 했다. 다른 그룹 관계자 역시 "정부조차 세종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마당에…"라며 고개를 저었다.

세종시는 충청도민에게 과연 '선물'일까. 적어도 2006년 첫 삽을 뜰 때까지만 해도 참여정부에 몰아줬던 수많은 표가 아까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선물의 빛도 점차 퇴색되고 있다. '공공기관을 이전하고 시간만 지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낙관론도 근거를 잃어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종시의 자족 기능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연구소 대학 등 도시 유지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들이 모두 등을 돌리고 있다.



◆무슨 수로 인구 50만 채우나

"자립형 지방화는 지방 대학을 집중 육성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뿐만 아니라) 지방 산업의 육성 전략을 함께 결합시켜 나가야 합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말 대통령 당선 직후 국가 균형 발전에 관해 한 말이다. 성경륭 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도 재직 시절 "자립형 지방화 전략의 핵심은 산(産) · 학(學) · 연(硏) · 관(官)의 네트워킹"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 모두 대학과 기업을 핵으로 보고 있었다.

5년여가 흐른 올 6월 초,세종시 건설청은 난관에 부딪쳐 있었다. 건설청 관계자는 "기업은 고사하고 대학 분교나 단과대 유치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국무총리실을 비롯 9부2처2청의 행정기관이 자리잡을 터는 전체 세종시 면적 2200만평(7290만㎡) 가운데 고작 18만평(60만㎡)이다. 산하 연구 인력까지 다 끌어와도 1만2000명에 불과하다. 세종시 건설청 측은 '서울대 정도의 대학과 삼성만한 대기업이 하나씩 있어야 인구 50만명을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누가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에 대해선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도시 전문가들은 "현 상태라면 서울시의 절반만한 땅덩어리에 인구 50만명을 채우기 위해선 인근 대전시 인구라도 빼와야 할 판"이라고 지적한다.



◆탁상 행정이 가져 온 재앙

세종시의 문제점은 건설 기획 단계부터 시작됐다. 공모를 거쳐 2006년 7월 확정된 세종시 건설기본계획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환상(環狀)형 구조의 도시 주변에 온통 아파트 예정지만 가득했다. 건설 예정 아파트는 총 20만채.인구 50만명을 유치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 아래 나온 숫자다. 하지만 정작 누굴 상대로 아파트를 채울지에 대해선 아무런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첨단의료단지 과학비즈니스벨트 등의 구호만 요란할 뿐 정교한 설계가 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결국 잡을 고기도 생각하지 않고 낚싯대와 망태기만 잔뜩 가져다 놓은 셈이다.

다행히 세종시 건설청은 20만채의 아파트 부지를 16만채 규모로 줄이고 여유 토지에 기업 공장을 들이는 방향으로 계획을 수정하고 있다. 문제는 기업과 대학을 유인할 만한 결정적인 인센티브가 없다는 것.이명수 자유선진당 의원은 "아무도 유치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연기 공주 청원 시장 등이 일부 뛰고 있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세종시에 정부 부처가 올지도 확실히 모르는데 누가 오겠느냐"고 반문했다.



◆"차라리 실버타운으로" 의견까지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일까. 박용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공공기관 이전이 상징적인 의미로 지나치게 강조된 탓"이라고 진단했다. 공공기관이 이전한다고 해도 지역경제를 발전시킬 전후방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세종시 건설청 내에선 중앙부처가 옮겨 오면 상징적인 의미는 있어도 기업이나 대학 입장에선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견해까지 나오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공무원들 옆에 자리잡았다가 괜히 밉보이면 어떡하나 하는 경계심리가 발동할 수 있다는 것.건설청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차라리 국내외 유명 대학 출신의 은퇴 교수들이나 노후를 조용하게 보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실버 타운'을 조성하는 것이 인구 유발면에선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최상철 지역발전위원장은 참여정부의 국토정책을 비판하며 2007년 펴낸 논문에서 명확한 답을 내놨다. 그는 "수도권의 성장을 억제하면 다른 지역이 잘 살 것이라는 전제가 잘못"이라며 "산업의 입지도,사람들의 주거 이전도 시장경제원리에 입각한 선택임을 잊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시가 완공되면 2012년부터 1만2000명의 중앙 부처 공무원들은 법률을 바꾸지 않는 한 짐을 싸서 이전해야 한다. 언젠가 국민 개개인이 갚아야 할 국가 채무인 22조원을 투자한 세종시는 수백만평에 달하는 녹지를 갖춘 고급 주택 단지로 바뀌게 된다. 그곳에 살게 될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박동휘/이상은 기자 donghuip@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