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의 제한적 허용을 핵심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정기국회 내 통과에 빨간불이 켜졌다. 더불어민주당이 ‘혁신성장’을 강조하면서 처리를 약속했지만, 정작 당내 이견으로 논의의 속도가 나지 않아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노동법 등 정기국회 내 규제 입법을 촉구한 가운데 경제계가 요구해 온 법안 처리는 뒷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무위, CVC 결론 못 내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6일 “CVC에 대한 결론이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무위 전체회의가 열리는 7일에도 논의가 이어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CVC는 전략적 목적으로 독립적인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을 말한다. 현재는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에 따라 일반 대기업 지주회사는 벤처캐피털을 계열사로 둘 수 없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대기업도 CVC를 통해 벤처기업에 적극 투자할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정부·여당은 CVC 허용을 추진했다.

민주당은 특히 CVC 허용을 기업규제 3법에 대한 비판의 ‘방패막이’로 삼아 왔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공정경제(기업규제) 3법을 통해 공정한 시장을 만들고, CVC 제도로 혁신벤처를 활성화해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CVC 허용은 여당이 ‘기업 옥죄기’에 나서는 것만은 아니라는 일종의 ‘알리바이’가 된 셈이다.

여-여 갈등에 처리 더뎌

하지만 실제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CVC는 경제계의 요구와는 거리가 있다. 정무위원장을 맡은 윤관석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는 △일반 지주회사가 지분 100%를 보유하는 완전 자회사 형태로 CVC 설립 가능 △부채비율 200%로 한정 △외부 출자 40%로 제한 등의 제한 조건이 담겼다. 해외에서는 CVC 설립과 펀드 조성 방식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없다.

이런 ‘반쪽’짜리 제도를 허용하는데도 여당 의원 간 의견이 부딪치면서 개정안은 상임위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정무위 법안소위에서도 여당 소속 정무위원 간 이견이 노출됐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주회사가 CVC를 소유하는 것은 타인의 돈으로 투자하는 사실상 금융행위와 같다”며 개정안에 강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반면 같은 당 김병욱 의원은 “돈이 귀했을 시기의 금산분리 원칙과 지금처럼 돈이 넘쳐나는 시기의 금산분리 원칙은 바뀌어야 한다”며 “대기업의 여유자금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정무위 소속 여야 대다수 의원은 CVC 허용에 동의하지만, 소위원회 만장일치 관례상 소위 통과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정무위가 전문가까지 초청해 ‘일반 지주회사의 CVC 허용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미래 먹거리 관련 법 처리는 하세월

정무위는 7일 전체회의를 열고 막판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결과에 따라 극적 처리 가능성도 남아 있다. 하지만 정무위가 이날도 결론을 내지 못하면 이달 중순 열리는 임시국회로 밀릴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검찰 개혁이나 기업 규제에는 적극적이지만, 미래 먹거리와 기업 성장에는 ‘관심 밖’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3월 대한상공회의소는 CVC 허용을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을 포함한 ‘미래산업 발전’ 분야 입법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대부분 법안이 상임위에서 입법화의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항공·위성사진 등 국가가 보유한 정보를 민간 기업에 제공하는 내용의 국가공간정보기본법은 8월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했지만, 국토교통위원회에서 한 차례 논의됐을 뿐이다. 자율주행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역시 지금까지 상임위에서 한 번 다뤄지는 데 그쳤다.

■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

corporate venture capital. 기업이 재무적 이익뿐 아니라 전략적 목적을 가지고 독립적인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 공정거래법상 금산분리 원칙 때문에 국내에서는 일반 대기업 지주회사가 CVC를 계열사로 두지 못하고 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