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을 두고 ‘4+1 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의 합의가 결렬되면서 패스트트랙 무용론에 힘이 실리고 있다. 법안을 시급하게 처리한다는 애초 취지와 달리 정치적 갈등만 불러일으킨 데다 본회의 통과조차 불투명해지면서다. 일각에서는 모든 법안에 적용 가능한 패스트트랙을 국가안보와 관련한 것이나 위헌 결정으로 개정이 시급한 법안 등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패스트트랙 법안으로 지정된 선거법 개정안은 이미 원안(지역구 225석+비례대표 75석)이 완성돼 지난달 27일 본회의에 자동 부의됐다. 하지만 4+1 내부 이견으로 원안과 크게 달라진 ‘250+50 수정안’이 논의됐다. 이마저 비례대표에 적용할 연동률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다가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에선 개정안 원안을 발의한 당사자들이 초안과 크게 달라진 수정안을 내려고 하다가 실패한 데 비판을 제기했다. 패스트트랙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는 주장이다. 본회의가 열린 뒤 수정안을 상정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일반 법안일 경우 의원 30명이 수정안에 찬성해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면 된다(국회법 95조).

하지만 4+1이 의결정족수(과반수) 확보만을 목적으로 ‘나눠먹기식 수정안’을 만드는 데 치중했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야권에선 “쟁점이 될 만한 법안을 내용도 확정하지 않고 패스트트랙에 태운 뒤 시간을 끌다가 막판 정치적 합의로 수정안을 제출해 통과시키는 건 ‘법안 알박기’와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이에 따라 패스트트랙을 원점부터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과거 “소관 위원회에서 법안에 대한 충분한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회부되는 것은 ‘토론과 숙의’를 거쳐 의사 결정에 도달하는 의회정치의 근본적 가치와 부합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패스트트랙을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패스트트랙 대상으로 지정될 수 있는 것은 ‘위원회에 회부된 안건이나 법사위에 체계·자구 심사를 위해 회부된 안건’이다. 위원회 심사 단계에 있는 모든 안건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패스트트랙 적용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예산, 무역, 국방, 연금, 정부조직 등이 해당한다. 미국 의회는 전쟁권 결의안, 연금개혁법, 핵무기 비확산 관련 원자력법 등을 패스트트랙으로 규정해 처리했다. 영국 독일 일본 등도 제한적으로 패스트트랙을 적용하고 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