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고마쓰도 전범기업"이라는 김광수 의원… 스멀스멀 올라오는 한탕주의
김광수 국민의당 의원이 21일 국회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국민연금, 일본 전범기업에 최근 6년간 4조707억원 투자’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국민들의 정서에 맞지 않은 졸속 위안부 합의, 군함도 강제동원 등 과거사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가운데, 국민연금이 2011년부터 작년까지 일본 전범기업에 총 4조원이 넘는 금액을 투자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김 의원이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2011년 2005억원, 2012년 3790억원, 2013년 6008억원, 2014년 7646억원, 2015년 9315억원, 2016년 1조1943억원 등 최근 6년간 일본 전범기업에 총 4조707억원을 투자했다. 김 의원은 2016년 투자금액은 1조1943억원에 달해 2011년 2005억원 대비 5배 이상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2016년 말을 기준으로 투자 금액이 많은 상위 5개 기업은 △도요타자동차 2386억5000만원 △신에쓰화학 1299억4000만원 △고마쓰 969억1000만원 △후지중공업 883억2000만원 △닛산자동차 822억4000만원 등이다. 김 의원은 자료에서 이들 기업을 모두 ‘전범기업’이라고 칭했다.

또 얼마 전 영화로 개봉돼 논란이 되고 있는 ‘군함도’라 불리우는 일본 하시마섬에 10만 명 이상의 한국인을 강제동원한 대표적인 전범기업 미쓰비시그룹 계열사인 △미쓰비시전기 430억6000만원 △미쓰비시중공업 213억2000만원△미쓰비시화학 38억1000만원 등 총 681억9000만원을 투자해 2015년 474억6000만원 대비 44%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국민이 납부하는 국민연금기금으로 일본의 전범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라고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며 “국민연금은 이번 기회에 전범기업 및 사회적 지탄을 받는 기업에 대한 투자원칙을 제대로 세울 것”을 촉구했다.

김 의원의 보도자료를 보면 곳곳에 의문이 든다. 우선 도요타 신에쓰화학 고마쓰 후지중공업 닛산이 어떻게 전범기업인지 궁금하다. 도요타는 1937년 설립된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다. 1936년 승용차 ‘AA’를 만들었으며 1938년부터는 현 도요타시인 고로모에서 트럭을 주로 생산했다. 그 때 만든 트럭이 2차 세계 대전 때 군수물자로 쓰였을수 있으니 전범기업이라면 할 말은 없다.

김광수 의원실 관계자는 “일본기업을 모두 전범기업이라 칭하지는 않았다”며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총 299개 일본전범기업 명단에 속한 기업”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6년간 4조707억원 투자’라는 수치에도 큰 오류가 있다. 기업별 투자액은 연말 기준 국민연금이 보유한 일본 기업의 순자산(주식수*주가)이어서 6년간 주가 상승분을 포함한다. 2011년 사 놓은 이들 기업 주가가 오르면 투자액은 불어나는게 당연하다. 닛케이225지수는 2011년 8000대에서 2016년말 1만9000대로 2배 이상 올랐다. 국민의 노후 자금인 투자수익이 증가했으니 그 점에서는 칭찬을 받는게 마땅하다.

김 의원측은 “주식의 가치가 상승했 치더라도 누적 투자금의 계산방식의 시각의 차이일 뿐 수치상의 오류로 단정지을 수 없다”며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지적한 사항이 개선되지 않는 것을 지적한 것은 당연한 책무”라고 말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와 히로시마 징용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미쓰비시중공업이 속한 미쓰비시그룹을 전범기업이라고 부르는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김 의원의 논리라면 일본을 찾는 한국인은 모두 ‘매국노’라고 불러야할 것 같다. 지난 8월까지 방일 한국인은 466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1.7% 증가했다. 방일 외국인 관광객 1위인 중국인(488만명)과 맞먹는 규모다. 일본을 찾는 한국인은 먹고 자고 이동하는데 미쓰비시그룹 계열사를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이번 보도자료는 지난해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이 ‘국민연금의 전범기업 투자제한 법안’ 발의 때 이미 내 놓은 수치를 업데이트 한 ‘재탕 자료’다.

국정 감사장은 언론에 뜨고 싶은 의원들의 욕심 탓에 종종 퍼포먼스 경연장이 되곤 했다. 부실한 자료를 기반으로 피감 기관장을 호통치는 일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올해도 기업인 국감 증인 출석은 역대 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김 의원은 “국민연금이 전범기업에 대해 계속해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핏대를 세울 공산이 크다. 올해도 ‘한탕주의’ 국감의 조짐이 슬금슬금 퍼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