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장관·정치권 인사 불참으로 기념식·정책협 무더기 취소·연기
'자체 행사'로 규모 축소하기도…"민감한 시기" 급하지 않은 행사는 자제


'비선 실세'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의 불똥이 지방자치단체로 튀고 있다.

개청식이나 정책협의회 등 지방자치단체·기관들이 공들여 준비한 '국가급 행사'가 줄줄이 취소 혹은 연기되는 등 파행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이나 장·차관 등 중앙 부처 고위 관료들이 애초 참석키로 했던 행사에 불참하는 데다 어수선한 시국 탓에 정계 인사들도 가급적 참석을 꺼려서다.

지역을 홍보하기 위해 대규모로 계획했던 지자체들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자체 행사'로 규모를 대폭 축소, 면피용으로 치르기도 한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우리 지역을 알리거나 중앙 정부에 요구, 건의할 모처럼의 기회라 꽤나 많은 공을 들였는데 시국이 이러니 정상적으로 치를 수 있겠느냐"며 "파문이 수그러들어야 다시 준비할텐데 지금으로서는 그때가 언제인지조차 알 수 없다"고 푸념했다.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중부권 정책협의회'가 무기한 연기됐다.

대전·세종시와 충남·충북·전북·경북·강원도 등 7개 광역 지자체 시·도지사가 이 협의회 참석 대상이었다.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공동 추진할 수 있는 8개 항의 정부 공동 건의문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상생 방안 모색 차원에서 지난 6월 협의회를 구성한 후 5개월 만에 처음 열리는 정례회의라 준비에 공을 들였지만 어느 지역이 먼저랄 것도 없이 연기에 합의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국이 어수선한 마당에 지역 현안 해결을 중앙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한들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을뿐더러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남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애초 지난 4일 전남 나주 한전 본사에서 '2센터' 개소식을 계획했다.

2센터는 여수에 자리 잡은 1센터와 함께 현 정부의 경제분야 역점사업인 창조 경제 육성을 지원하는 기능을 한다.

박 대통령 참석 가능성도 점쳐졌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는 한전 측에 행사 연기를 통보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지만 최순실 게이트 파문 때문이라고 미뤄 짐작할 수 있다.

광주교도소 역시 지난 4일로 잡았던 개청식을 연기했다.

작년 10월 북구 문흥동에서 삼각동으로 이전한 이후 1년여 만에 시설 홍보를 위해 준비한 행사였으나 기일도 정하지 못한 채 무기한 연기했다.

개청식에는 당초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 김학성 교정본부장 등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 장관의 일정 조정이 여의치 않은 데다가 법무부 내부적으로 공식 행사를 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전격 취소됐다.

지난 2∼3일 충북 단양에서 열릴 전국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도 연기됐다.

홍윤식 행정자치부 장관과 유력 정치인들이 초청됐지만 참석 여부가 불확실한 데다가 '어수선한 시국'에 부담을 느낀 시장·군수·구청장들이 대거 불참 통보하면서 자연스럽게 무기 연기됐다.

의장단은 총회 후 지방자치 발전 공동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최순실 게이트'라는 태풍 정국을 맞아 개최 일정도 정하지 못한 채 협의회를 미뤘다.

진천·음성에 조성된 충북 혁신도시에 입주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은 개청식을 직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지난 2일 조촐하게 치렀다.

당초 박 대통령이 참석, 메시지를 전할 예정이었으나 최순실 사태로 일정이 전면 취소되면서 김동극 인사혁신처장이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공무원인재개발원은 이시종 충북지사를 비롯, 인근 자치단체장과 유관기관 단체장에게도 초청장을 보냈지만 이마저도 모두 취소했다.

남경필 경기지사도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 유럽 방문 일정을 단축했다.

출장 일정을 12∼19일로 잡았지만 어지러운 정치 상황을 감안, 꼭 필요한 일정만 소화한 뒤 오는 17일 귀국하기로 했다.

지자체들은 중앙 정부와 관계 없는 행사도 취소, 연기하거나 축소를 검토하는 등 눈치를 보고 있다.

자칫 "분위기 파악도 못한다"는 비판 여론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연찬회 같은 연례적인 행사를 하더라도 규모를 줄이거나 늦추는 등 조심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내부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김광호, 손상원, 심규석, 이승형, 이재림 기자)
(전국종합=연합뉴스) 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