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 브레인이 없다] '3류 정치' 진원지 선거캠프…"국가비전 제시보다 정치공학 난무"
“어떻게든 이기고 보는 게 선거다. 선거의 ‘선’자도 모르면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캠프 핵심 관계자는 사석에서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 많은 복지공약을 내놓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런 핀잔을 줬다. 박 후보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간 엎치락뒤치락하는 지지율 경쟁 속에서 “표를 끌어올 수 있는 공약은 다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토로였다.

당시 여야는 경제민주화와 ‘보편적 복지’ 공약 경쟁을 벌였다. 새누리당은 ‘국민행복 10대 공약’을 통해 복지공약을 쏟아냈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월 20만원의 기초연금 지급, 고교까지 무상 교육 확대, 0~5세 무상보육, 평균 9만원인 사병 월급 40만원으로 인상 등이다.

이에 뒤질세라 문 후보 측은 0~5세 어린이집과 유치원 보육비용 전액 지원, 고교 무상교육, 대학 반값등록금 시행, 군 복무자 제대 시 630만원 지급, 2017년까지 비정규직 절반 축소, 1인당 연 100만원 의료비 상한제 시행, 기초노령연금 및 장애인연금 인상 등을 약속했다.

새누리당이 집권했지만 상당수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애당초 실현 가능성이 없었다는 지적이다. 재원 대책도 없는 포퓰리즘 공약이 쏟아진 것은 “무조건 이기고 보자”는 승리지상주의와 멤버들조차 다 알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게 짜인 대선 캠프와 무관치 않다. 대선 캠프는 다양한 멤버로 구성된다. 후보와 일찌감치 인연을 맺어 참모 역할을 하는 원조그룹과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면서 각 분야 전문가 출신들이 이런저런 인연으로 캠프에 합류한다.

여기에 비공식적으로 후보와 인연을 맺으려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공조직과는 별도의 비선조직도 있다. 이들 조직 간에 ‘표 모으기 경쟁’이 벌어진다.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선 후보 캠프였던 안국포럼 관계자는 23일 “대학 교수와 정치권 진입을 노리는 관료 출신 등이 스스로 공약집을 만들어 찾아오는 사례가 부지기수였다”고 말했다.

2007년 6월 김동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각 정당 대선주자 캠프에 자문교수단으로 참여하고 있는 교수가 538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해 대선 막판 이명박 새누리당,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선 후보 진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대학 교수만도 1500명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지역별 각계 그룹들이 자발적으로 특정 대선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기도 했고, 보수와 진보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2012년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일한 한 관계자는 “선거철만 되면 시대적인 소명이 아니라 개인의 입신양명을 위해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는 인사들이 이 캠프 저 캠프 문을 두드리곤 했다”고 말했다.

캠프에서도 어떻게든 세불리기를 해야 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이들을 받아들여 공약을 만들고 선거전략을 짜는 데 투입할 수밖에 없다.

같은 후보 캠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유력인사들이 별도로 관리하는 외곽 조직도 적지 않았다. 캠프 내 각 그룹의 공약 만들기 경쟁이 붙었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지 못하다 보니 포퓰리즘적 공약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선거 캠프가 다음 집권자의 국가전략을 짜고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 보다 정밀하게 준비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유권자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정치공학적 공약이 넘쳐나다 보니 매 정권 공약 이행률은 절반에 못 미쳤다. 경제정의실천연합 분석에 따르면 김대중 정부 공약 이행률은 18.2%, 이명박 정부는 39.5%였다. 경실련이 지난 2월 발표한 박근혜 정부의 공약 이행률은 41%였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