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실험 명분쌓기', '美 감시 따돌리기 위한 연막전술' 분석

북한이 지난달 6일 '수소탄' 핵실험을 불과 며칠 앞두고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을 논의하자고 제의했던 사실이 22일 뒤늦게 알려지면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속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이 미국에 진정성 있는 제안을 했다기보다는 제4차 핵실험을 감행하기 위한 '명분 쌓기' 차원에서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다시 한번 언급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초 뉴욕을 방문한 리수용 외무상의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 이어 같은 달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서도 "하루빨리 낡은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새로운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제의하는 등 평화협정 공세를 집중적으로 펼쳐왔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가 상당히 진전된 이후에만 평화체제 논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북한 역시 '선(先)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의사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북한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 거절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평화협정 카드를 꺼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1990년대 초부터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주장으로 보기는 어렵다"면서 "북한이 더이상 잃을 것 없다는 입장에서 통 크게 한 번 던져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제의는 핵실험 일정을 정해놓고 미국의 관심과 감시를 다른 곳으로 따돌리기 위한 전략이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제1위원장이 지난해 12월15일 수소탄 실험 진행을 명령했다는 북한 당국의 발표로 미뤄볼 때 북한측이 평화협정을 제의했을 때에는 이미 핵실험에 대한 준비를 끝낸 상태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 제1위원장은 앞서 지난해 12월 10일 수소탄 발언을 처음 꺼냈으며 비슷한 시기 노동당 군수공업부장(장관급)을 김춘섭에서 리만건으로 바꾸고 핵무기 개발을 담당하는 군수공업부 관계자들을 전격적으로 교체하는 등 핵실험 준비에 박차를 가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은 핵실험을 닷새 앞둔 지난달 1일 육성 신년사에서 핵 관련 언급을 자제하면서 올해는 노동당 7차 대회를 계기로 핵보다 경제 건설에 치중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이 또한 '연막전술'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며 손을 내밀고 뒤로는 핵개발을 추진한 '화전양면' 전술을 구사했음이 드러났다"면서 "비핵화를 함께 논의하자는 미국의 역제안에 북한이 발을 뺀 것은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현지시간) "북한이 지난달 6일 4차 핵실험을 감행하기 며칠 전 북미가 평화협정 논의에 은밀히 합의했다"면서 "미국은 비핵화 문제를 평화협정 논의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으나 북한은 거부했고, 곧이어 핵실험을 감행했다"고 보도했다.

(서울연합뉴스) 문관현 기자 khm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