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데스크 시각] 경제민주화, 안철수의 방향 착오
‘공정성장론’을 앞세운 안철수 의원의 지난 27일 기자회견은 실망스러웠다.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3년여 전 정치에 입문하던 시절과 하등 달라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세월 정치적 풍파와 지지도 부침을 겪으며 쌓았을 법한 내공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우리 경제를 “몇몇 재벌에 의존해서는 재벌만 행복하고 국민 다수는 불행한 구조를 바꿀 수 없다. 지금 약육강식의 수직적 경제 질서는 정글의 법칙, 승자 독식의 질서가 지배한다”고 규정했다. 과거 ‘삼성 동물원’ ‘LG 동물원’이라는 조어를 만들어 한국의 글로벌 기업을 한껏 이죽거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수탈과 피탈의 이분법적 관계로 양단한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화법이었다.

재벌만 행복하다?

승자 독식이라니? 그의 눈에는 지난 외환위기 때 30대 그룹의 절반이 날아가고 지금도 조선 기계 철강 화학 분야의 대기업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현실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재벌만 행복하고 국민 다수는 불행하다’는 주장은 ‘국회의원만 행복하고 국민 다수는 불행하다’는 것과 거의 동일한 수준의 저급한 수사다.

진단이 이 지경이니 해법이 온전할 리 없다. “온갖 독과점 질서를 공정거래 질서로 바꿔야 한다. …중소기업도 실력만으로 대기업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개인도 기업도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어야 한다.” 안 의원은 이것이 자신이 오랫동안 강조해온 ‘공정성장론’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경제민주화를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론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심히 불쾌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주장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들고 나온 ‘공정사회’의 개념과 거의 닮아 있다. ‘금수저’ ‘흙수저’ 등과 같은 주변의 감성적 코드 정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하지만 안 의원이 “지금 대한민국은 왜 절망하는가”라고 던진 자문(自問)에 철 지난 경제민주화로 자답(自答)하는 것은 정치적 방향착오가 아닐까. 이 구호의 정치적 생명력이 다음 대선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거짓 선동이 구정치

더욱이 안 의원의 논법은 새로울 것도 없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를 비판해온 사람들의 전매특허가 ‘정글경제’였다. 초원의 사자가 얼룩말을 사냥하듯이 시장경제는 자유 경쟁이라는 미명 아래 강자가 약자를 희생시키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 결말은 ‘따뜻한 자본주의’ ‘사회적 경제’ 등으로 치장한 국가의 개입이었다. 정치인들은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깃발을 들고 국민을 속였다.

안 의원은 이런 종류의 정치적 타락에 빠지는 것을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거짓 선동이야말로 구정치의 본산이다. ‘구조개혁→경제활성화’로 갔어야 할 것을 ‘경제민주화→경제활성화→구조개혁’으로 역주행한 박근혜 정부의 수순 착오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경제민주화 공약에 함몰된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초 구조개혁의 호기를 놓쳐버렸다.

안 의원은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고 더 깊이 탐색해야 한다. 세계가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 뉴노멀에서 뉴애브노멀로 이어지는 글로벌 경제의 광폭성이 태평양의 조각배처럼 가벼운 한국을 어디로 끌고가는지에 대한 두려움과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은 쏙 빼놓고 경제민주화만 주창하는 것은 거짓 성장론이다.

조일훈 증권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