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의 데스크 시각] 최 부총리! 딴 사람은 몰라도…
힘이 있는 장관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든 언론이든 협력자를 끌어모으기가 용이하다. 관료들의 역할을 배분하고 조직 간 칸막이를 제거하는 데도 강점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현오석 전 부총리는 불운했다. 재임시절 그에 대한 세간의 비판은 지나치게 야박했다. 경제팀 전체를 이끄는 지도력이 미흡하고 국회를 상대하는 정치력도 부족했지만 무능·무소신으로 싸잡아 매도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권 내 지원세력이 없었고 대중적 인기도 빈약했던 탓에 언론들도 그를 얕잡아본 것이 사실이다.

남 탓하는 자리 아니다

한쪽의 극단이 다른 쪽의 극단을 불러들이듯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임자의 유약한 이미지를 대척점으로 삼으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여당 원내대표 출신에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도 돈독했다. 공무원들도 실세 장관 등장을 반겼다. 주요 정책이 국회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거나 조변석개식 여론에 밀려 정책 일관성이 훼손되는 일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만발했다.

하지만 취임 7개월여를 맞은 최 부총리의 중간 성적표는 전임자보다 크게 나을 것이 없다. 주택거래량 정도를 빼놓고는 분기 성장률, 투자·소비 증가율, 청년실업률, 가계부채, 세수실적 등 거의 모든 지표가 뒷걸음질치고 있다.

지표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요즘 무력감에 빠져 있는 듯한 그의 언사다. “(4대 부문) 구조개혁을 하려면 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 뭐만 잘못되면 나 때문이라네. 부총리가 법 개정하고, 여론 형성하고 온갖 것을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다.”(2월11일 터키 이스탄불 기자간담회)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하소연이지만 타이밍은 ‘글쎄’다. 이달 초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국회가 나서서 국민적 합의를 이뤄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며 “결국은 정치권이 총선 공약 등으로 국민에게 뜻을 물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가 아니라 국회라고 했다. 선거철마다 무상복지 폭주를 일삼아온 국회에 또다시 결정을 떠넘기겠다는 얘기다.

정부 역할 포기 말아야

아주 위험한 신호다. 딴 사람은 몰라도 최 부총리는 그러면 안된다. 여론을 설득하고 국회와 대차게 붙어서라도 현안을 돌파하고 개혁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적 명령이 그의 발탁 배경이었다. 이제 와서 ‘현실’ 운운하는 것은 부총리의 화법이 아니다. 남 탓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누가 뭐래도 경제정책의 방향과 뼈대는 정부가 세워야 한다. 아직은 조력자가 더 많다. 최 부총리가 실세라서가 아니라 그의 말처럼 올해가 경제체질을 바꿔놓을 ‘골든타임’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국회 핑계를 대서는 안된다. 담뱃값 인상으로 서민들의 여론이 좋지 않다며 별도의 저가(면세) 담배를 내놓겠다는 것이 현 국회의 수준이다.

행정부의 헌법적 소임, 부총리의 존재 의의를 다시 생각하길 바란다. 해답도 없이 시일만 끌고 있는 현안들부터 갈무리해야 한다. 연금개혁은 국회, 노동개혁은 노사정위원회, 복지 축소와 증세 논의는 차기 총선에 각각 던져다 놓고 그 결과만 기다리고 있다면 애초부터 실세 장관을 기용할 이유가 없었다. 포퓰리즘적 여론의 눈치를 보고 국회 동정이나 살피는 부총리는 사절이다.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