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실무접촉 과정 공개하며 남측 주장 조목조목 반박

한때 대화국면 전환이 기대됐던 남북관계가 당분간 냉각기를 피할 수 없게 됐다.

북한은 13일 남북당국회담의 무산 책임을 남쪽으로 떠넘기며 "회담에 털끝만한 미련도 없다"며 추후 회담 가능성을 일축했다.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이날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이번 당국회담 무산의 원인인 수석대표의 급과 의제 문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조목조목 주장했다.

우선 수석대표의 급과 관련해 "지난 시기 북남상급회담 단장으로 내각 책임참사의 명의를 가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 1부국장을 내보고 서기국 부국장이 남조선 통일부 차관과 늘 상대해 왔다"며 "이번에는 남측 당국의 체면을 세워주느라고 1부국장도 아닌 국장을 단장으로 했다"고 밝혔다.

과거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을 맡았던 김령성, 권호웅 등은 모두 조평통 서기국 1부국장이었고, 2007년 남북총리회담 예비접촉에서는 전종수 서기국 부국장이 통일부 차관을 상대했다.

특히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대남 담당 비서를 겸하는 사실을 거론하면서 "우리의 당 중앙위원회 비서가 (남측) 행정부처 장관 따위와 대상도 되지 않는다"며 "북남대화 역사가 수 십년을 헤아리지만 우리 측에서는 당중앙위원회 비서가 공식 당국대화마당에 단장으로 나간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 정부가 조평통 서기국의 정치적 위상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해 "서기국은 북남관계를 주관하고 통일사업을 전담한 공식기관"이라고 주장하고, "이번에 북남대화와 관련한 중대입장을 천명한 것도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이름으로 된 특별담화문"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번 당국회담 실무접촉에서 남측이 회담 일정을 1박2일로 짧게 잡고 환영·환송만찬도 배제한 사실을 거론하면서 "회담까지 대결의 마당으로 만들려는 속심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제와 관련해서도 "(남측은) 개성공업지구 정상화와 금강산 관광 재개문제도 저들의 합의서 초안에 '정상화'와 '재개'라는 표현을 빼고 모호하게 해놓으려 했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이처럼 실무접촉과 회담 대표단 명단 교환과정에서 있었던 일까지 공개하면서 남측을 비난했고, 앞으로도 각종 매체와 대남기구를 내세워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우리에 떠넘기는 선전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도 남북 당국회담 성사를 위해 북한에 수정 제의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남북관계의 경색 국면이 당분간 풀리기는 어렵게 됐다.

그러나 일정 기간의 냉각기를 거치면 남북관계를 재개하기 위한 양쪽의 움직임이 재개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은 이번 담화에서 "지금 우리 군대와 인민은 무뢰한들과 더 이상 상종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여론을 남북관계 중단의 이유로 내세웠다.

이는 여론의 변화를 내세워 남북관계 복원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상황에 따라 유연성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우리 정부도 원칙을 지켜 대북 수정제의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고조됐던 국민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상황을 계속 외면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따라서 남북 양쪽 모두 당국회담에 나서는 수석대표의 급을 올리거나 내려서 현재의 걸림돌을 돌파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남북 직제의 차이를 감안할 때) 우리 정부가 차라리 총리급 회담으로 격상시켜 현안을 풀어나가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남북한 모두 총리가 있는 만큼 급수 논란을 피하고 남북관계를 포괄적으로 풀기에는 총리급 회담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이미 남북한은 1990년대 초반 고위급 회담과 20007년 총리회담을 한 경험이 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급수를 내려서 의제별 실무접촉으로 가는 것이 현안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이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개성공단, 금강산 등 분야별로 쪼개서 실무회담에 나서는 것도 현 상황을 돌파할 타개책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이 역시도 남북간 일정기간 냉각기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jy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