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31일 김중수 신임 한국은행 총재에게 "주요 20개국(G20) 의장국 중앙은행이란 위상에 걸맞게 한은을 바꾸라"고 강도 높게 주문했다. 김 신임 총재는 "위기극복을 위해 국제공조가 중요하다"고 답해 출구전략 시행(위기 때 취한 각종 정책을 철회하는 것)이 상당 기간 늦춰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김 신임 총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한은 총재가 이제 글로벌한 위상을 가졌다"며 "중앙은행 총재 역할을 과거엔 국내에서만 했는데 이제 글로벌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이제 역할이 달라졌으므로 한은도 새로운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며 "인식의 변화,역할의 변화 등 과거와는 다른 확연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출구전략에서 각국이 공조해야 하며 전반적 금융개혁 일정에 있어서도 G20 의장국으로서 역할을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변화 방향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중요한 일을 했던 그 경험으로 더 중요한 한은 변화에 기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김 신임 총재는 "G20 의장국 중앙은행으로서 그 자격에 걸맞은 역할을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강조한 '출구전략 국제공조'에 대해 "명심하겠다"며 "나라들마다 특수한 상황이 있지만 세계적 위기 극복을 위해 공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대통령의 당부와 김 신임 총재의 답변을 살펴봤을 때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등 본격적인 출구전략 시행은 하반기 이후에나 추진될 것으로 관측했다. 현재 G20 국가 중 기준금리를 인상하거나 지급준비율을 올리는 등의 출구전략을 펴고 있는 나라는 중국 인도 호주 등 일부에 불과하다.

위기의 진앙지이자 세계경제의 중심인 미국은 유동성 공급 축소 등의 조치는 취하고 있지만 금리 인상은 빨라야 올 연말께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유로존은 그리스 등 일부 국가의 국가채무 문제로 출구전략을 펴기가 쉽지 않으며 일본이나 영국은 오히려 돈을 더 풀고 있는 실정이다.

한은은 기획재정부와 함께 글로벌 금융규제 논의에서 이 대통령이 제안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등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안전망이란 한국 등 기축통화국이 아닌 국가에서 외화유동성 위험 등으로 경제가 휘청거리지 않도록 다자간 통화스와프 등을 체결하는 것을 말한다.

김 신임 총재는 이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한은 내부에서 G20 및 글로벌 금융규제,국제 등의 관련 부서를 대폭 확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이와 더불어 한은의 국내 역할에 대한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한은이 대한민국 경제 전체를 보고 일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은의 독립성을 위해 적극 지원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김 신임 총재에게 "나한테서 임명장을 세 번 받는다"고 말을 건네며 두터운 신뢰를 표시했다. 김 신임 총재는 2008년 2월 청와대 경제수석으로,같은해 9월엔 OECD 대사로서 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이 대통령은 "김 총재가 OECD 대사로 가서 한국의 위상이 과거와 달라진 것을 잘 알테니 그런 점에서 글로벌한 인식이 잘 돼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홍영식/박준동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