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가 15일 지난해 대선과정에서의 불법 자금 유입과 관련해 대국민사과를 하고 검찰에 자진 출두키로 함에 따라 대선자금을 둘러싼 대치 정국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특히 이 전 총재가 `마지막' 회견에서 "불법자금 문제는 제가 시켜서 한 일로 전적으로 저의 책임으로 국법의 심판을 받겠다"며 검찰 자진출두와 `감옥행 자처'입장을 밝힘에 따라 지난 대선 당시 이 후보측의 대선자금 수사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이 전 총재가 이날 전격 기자회견을 갖고 검찰출두 카드를 택한 것은 최돈웅(崔燉雄) 의원의 SK비자금 100억원 수수에 이어 자신의 최측근인 서정우(徐廷友) 변호사가 삼성, LG, 현대차 등에서 350억원대의 자금을 수수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 전 총재는 지난 9월 귀국후 대선자금 문제가 정국의 최대 현안으로 부상해온데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는 후문이다. 대선 당시 당 재정위원장을 맡았던 최돈웅 의원은 물론 김영일(金榮馹) 전 사무총장에 이어 서정우 변호사까지 검찰수사를 받는데 따른 `보스'로서의 책임과 전직대선 후보로서의 국정혼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최병렬(崔秉烈) 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고해성사론'을 거듭 제기하면서 지난해 대선과정에서의 최정점에 서 있는 이 전 총재의 입장표명을 압박한 것도 이 전 총재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에 따라 이 전 총재는 유승민(劉承旼) 전 여의도연구소장, 이병기(李丙琪) 이종구(李鍾九) 전 특보 등 측근들은 물론 당 고위 관계자들과도 접촉을 갖고 대국민 사과와 검찰출두 시기 등을 저울질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총재는 이날 회견에서 "돈 받은 사람들도 당과 대선을 위해 몸을 던져 일했을 뿐이니 대선후보이자 최종책임자인 제가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며 "제가 이 모든 짐을 짊어지고 감옥에 가겠다"고 초강수 카드를 내놨다. 대리인들만 처벌받고 최종 책임자는 뒤에 숨는 풍토에서는 결코 대선자금의 어두운 과거가 청산될 수 없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이 전 총재는 또 "한나라당은 저 이회창을 밟고 지나가서라도 부디 나라를 위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당으로 거듭 태어나 달라"고 한나라당에 대한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이 전 총재의 한 측근은 "이 전 총재는 대선자금 수사로 인한 국정혼돈을 피하기 위해 더이상 입장표명을 늦출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오늘 회견을 하게 됐다"며 "특히 이 전 총재가 대선자금 문제로 인한 한나라당의 피해를 막기 위해 자신을 밟고서라도 거듭 태어나라고 말한데 주목해 달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재가 불법대선자금의 최종책임자로서 `희생양'을 자처함에 따라 한나라당으로서는 일단 대선자금 정국의 악몽을 털어내고 새출발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패배자인 이 전 총재가 검찰 자진출두를 통해 대선자금 수사에 적극 응하기로 한 만큼 승리자인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도 상당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한나라당은 보고 있다. 노 대통령이 `10분의 1' 발언을 한 것도 불법 대선자금 유입을 사실상 시인한 만큼 대선자금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인 것이다. 실제 이 전 총재는 회견에서 "대리인들만 처벌을 받고 최종책임자는 뒤에 숨는 풍토에서 결코 대선자금의 어두운 과거가 청산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해 한나라당의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 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측의 대선자금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등 강공으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대선자금 파문으로 지연됐던 총선준비위 발족도 서둘러 가면서 정치개혁과 공천착수 등 총선행보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한나라당은 이날 박 진(朴 振) 대변인 등 대변인단의 논평을 잇따라 발표하고 노 대통령측의 대선자금 및 측근비리의혹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박 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불법자금 창고라는 의혹이 있는 `금강팀'과 `장수천'에 대해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은진수(殷辰洙) 수석 부대변인은 "노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은 고도로 계산된 것으로서 법과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라며 "검찰에게 어떻게든 불법대선자금 규모를 한나라당의 10분의 1아래로 꿰맞추라는 지침이거나 이미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이 전 총재가 회견에서 불법 대선자금 규모를 검찰 수사로 드러난 `500억원' 가량이라고만 언급한 만큼 검찰 수사 과정에서 추가 불법자금 내역이 밝혀질 경우에는 오히려 한나라당에게 추가 부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검찰 수사 결과 노 대통령측의 대선자금이 한나라당의 것에 비해 미미하게 나타날 경우에는 한나라당은 대선자금 특검카드를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며 이 경우 대선자금 수사정국이 2라운드로 접어들면서 정국혼란은 계속될 수도 있다. (서울=연합뉴스) 최이락 기자 choinal@yonhapnew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