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1분 만이라도 더…"

헤어짐을 목전에 둔 이산가족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재회와 통일이었다.

기쁨의 순간도 잠시.

반세기를 기다렸지만 만남의 순간은 너무나 짧았다.

가족과 만나며 하염없이 흘렸던 눈물 속에 50년의 회한과 탄식을 모두 씻어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이별을 생각하니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재회의 기약도 없이 헤어져야 하는 이들은 가족과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만을 간절히 기원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고향에서 성묘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이들도 많았다.

이산가족들은 또 편지라도 주고받고 면회소에서 정기적으로 가족들을 만날 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많은 현 이산가족 상봉방식도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 재회와 통일 =동생과 상봉한 리동섭(65)씨는 "10년이면 통일이 될 것 같으니 그때까지 어머님을 잘 모셔라"고 동생에게 말한 뒤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드러냈다.

6.25전쟁때 의용군으로 끌려갔던 형 리종필(69)씨와 상봉한 종덕(64)씨는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시간이 지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잠자리를 같이하며 밤이 새도록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측 지질학박사인 리운룡(68)씨의 동생 정호(59)씨는 "형과 이야기를 하면서 입술이 바짝 말랐다. 부디 형이 건강하게 잘 살아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봤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 상봉방식 개선 =이산가족들은 좀더 자유롭게 판문점이나 개성 같은 곳에서 소풍처럼 상봉이 이뤄지고 가정방문 및 성묘 등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서울에서 동생 박명규(73)씨를 만난 남규씨는 "이렇게 행사가 진행되니 국가적으로 굉장한 비용이 드는 것 같다. 앞으로는 개별적으로 가정에서 만났으면 좋겠다. 수사관 하나 딸려 보내 가족.형제.부모를 만나게 해 줘야 진실한 만남이지…"라며 아쉬워했다.

남측 박성규(53)씨는 "이제 길이 열렸으니 모든 가족에게 상봉 기회가 완전히 개방돼 이번에 못 만난 나머지 가족들도 다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남측 이종덕(64)씨는 "형님과 얘기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며 "하룻밤이라도 같이 자면서 밤새도록 얘기하고 부모님 묘소에 성묘라도 한 번 같이 갔어야 하는데…"라고 안타까워했다.

박병련(63)씨는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휠체어 타고 오가는 걸 보니 안쓰러웠다. 옛집에도 가보고 불편한 부모님을 하루라도 모실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북측 김옥배(68)씨는 "어머니 품에서 잠들고 싶어 제대로 자지도 못했다. 어머니께 밥을 해 드리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 서신왕래 면회소 설치 =함종태(66)씨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서신교환, 면회소 설치는 물론 자유 왕래까지도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북측 오영재(64)씨는 "연락사무소나 이산가족 만남 정례화도 중요하지만 우선 전화와 편지의 상시 교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에서 온 임재혁(66)씨의 형 창혁(69)씨는 "앞으로 편지를 교환하거나 면회소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너무 짧은 만남이라 아쉬움이 크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 기타 =북한의 ''공훈배우''리래성(68)씨는 남북 영화교류 차원에서 2∼3년내 다시 남에 와 영화를 찍고 싶다고 밝혔고 ''인민배우'' 칭호를 받은 박섭(74)씨도 남북 합작영화가 탄생하기를 기원했다.

외과의사인 홍삼중(65)씨는 안과의사인 조카(홍건수씨)와 함께 고향인 제주도에 병원을 열어 인술을 베풀며 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김남국 기자 n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