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통큰" 결정을 내리겠다던 북측의 공언은 1천만
이산 가족과 한국 당국을 상대로 한 사기극이나 마찬가지였다.

북측은 남북 차관급 회담을 지난 21일 오전 10시(현지시간)에 열자고
했다가 그날 오후 3시로, 또다시 다음날인 22일 오전 10시로 연기하는
국제회담 사상 유례없는 "무례"를 범했다.

남측의 회담 대표 명단이 사전에 통보됐던 것과는 달리 북측은 명단마저
회담 시작 하루전까지 비밀에 부쳤다.

이뿐 아니다.

남북이 "6.3베이징 접촉 합의 정신"에 따라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하기로
한 약속과는 달리 북측은 회담 첫날 서해사태만을 언급했다.

이산 가족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 언급도 없었다.

북측은 두번째 만남 (6월26일)에서도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

서해사태의 사과를 요구했고, 회담장인 켐핀스키호텔에 게양된 태극기를
문제삼아 회담장소를 옮기자고 했다.

남측은 사소한 문제로 회담이 지연돼서는 안된다는 판단아래 회담장소를
북측이 원하는대로 차이나월드호텔로 옮겼다.

세번째 만남(1일)에서 북측의 태도는 더욱 가관이었다.

북측은 차관급 회담을 지속시켜나가면서 비료전달을 유도하려고 갖은
수작을 부렸다.

이런 과정에서 남북 양측은 제대로 주의제인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지
못한 채 불신의 골만 깊게 파고 헤어져야 했다.

이번 협상을 통해서 남측은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남측은 이산가족 상봉을 성사시키는데 총력을 기울인 반면 북측은 이런
저런 구실을 내세워 회담을 지연시켰다.

남측은 이산가족 문제에 있어서 상당한 진전이 있어야만 추가비료지원분
10만t을 보낸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나 북한은 이달말까지 20만t이 모두 북한에 전달돼야만 이산가족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고집했다.

이런 양측의 주장은 남측이 그동안 일관되게 견지해온 상호주의 원칙이
시험받는 "사건"이었다.

남측은 6.3베이징 합의 정신에 따라 비료지원과 동시에 이산가족상봉을
성사시키자고 했다.

반면 북측은 "먼저 주면 알아서 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과거의 남북회담이 남측이 일방적으로 주고, 북측이 받으면서 되레 큰소리
치는 결과를 초래했고 이번에도 그같은 나쁜 관행이 되풀이됐다.

이번 회담의 결렬이 이런 왜곡된 남북회담의 관행을 바로잡는 계기가
된다면 오히려 남북관계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베이징회담을 통해서 또하나 짚어야 할 것은 남한의 대북정책이다.

우리의 대북정책 기조인 햇볕정책은 일관성을 지녀야 하되 상황에 따라서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적용돼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북이 이산가족문제를 볼모로 유사한 행동을 계속할때 북에 대한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여론을 중시하는 국민의 정부가 기존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는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주지않아야 한다.

그래야 햇볕정책이 성공을 거둘 수 있다.

이번 협상이 결렬된 시점에서 북의 구태의연한 작태를 꼬집는 것 못지않게
우리의 북에 대한 당당한 태도를 가다듬어야 한다.

남북의 협상 관행이 고쳐지지않고서는 남북관계의 진전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과거와 현재의 교훈이다.

< 베이징= 김영근 특파원 ked@mx.cei.gov.c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