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아홉 달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감산 연장 탓이 크다. 우크라이나 드론이 흑해의 러시아 원유 수출기지를 공격했다는 러시아 국방부 발표도 불안감을 키운다. 연착륙 기대가 있는 미국과 달리 유럽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최근 유가 움직임은 주기적 변동으로 치부하기엔 양상이 심상찮다. 지난 주말 주요 유종 모두 급등하며 배럴당 80달러를 넘어섰다. 산유국들의 감산과 원유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예상, 그리고 석 달 만의 곡물값 상승 반전 속에 벌어진 일이다. 유가 움직임에 일희일비할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이상 폭염으로 전력에너지 사용량이 절정에 달한 상황이라 경시해선 안 된다.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원만하게 풀려 이란 재고 물량이 시장에 풀리는 등의 변화가 없다면 원유 수급은 점점 꼬일 공산이 크다. 더구나 몇 개월 뒤면 북반구의 겨울 난방 수요가 기다린다. 감산 카드를 휘두르는 산유국들은 지속적으로 자국 이익 극대화로 내달릴 것이다.

유럽 경기도 심상찮다. 최근 보름간 유로화 가치는 2.6% 떨어졌고 2분기 기업 실적도 코로나19 이후 최악이다. 독일·영국 국채로 몰려드는 자금도 유럽 주요국 중앙은행의 경기 침체 대응용 금리 인하(채권값 상승)에 대비한 사전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2분기 경제성장률이 연율로 0.3%대에 그친 것과 인플레이션 우려가 지속되는 것도 불안을 키운다.

근래 중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 들어서는 와중에 유럽까지 불황에 빠지면 한국 경제의 버팀기둥인 수출 회복은 요원해진다. 자동차산업이 호실적을 내고 있지만 전통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회복세는 아직 확실치 않다. 거시경제 운용의 시야가 한층 좁아진 분위기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 경제팀이 더욱 긴장해야 한다. 경각심을 높이고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외에 뾰족한 즉효 약이 없다. 8개월 남은 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의식한 여야의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