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중앙회가 그제 연 ‘중소기업 규제개혁 대토론회’에서 나온 사례들은 왜 한국이 기업하기 힘든 나라인지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한 예로 정부가 내년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를 도입해 폐LED(발광다이오드) 조명에 환경부과금을 물리기로 하면서 2000여 개 국내 중소 LED 조명업체가 265억원을 부담해야 할 판이다. 업계 전체 연간 영업이익(200억원)을 웃도는 액수니 사업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평판형 LED 조명에 EPR을 시행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의료기기 도매업체들이 판매한 콘택트렌즈의 모델명을 비롯해 공급자 정보, 거래처, 일시와 수량, 단가를 낱개별로 입력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내는 것도 규제 탓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 7월부터 유통구조 투명성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이들 품목을 의료기기 공급내역 보고 제도 대상에 포함한 데 따른 것이다.

업종과 품목, 시설 구별 없는 겹겹의 거미줄 규제를 보면 기업 입장에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런 식으로 경영 의지를 꺾어버리니 “차라리 회사를 접는 게 낫다”는 성토가 쏟아지는 것 아닌가.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규제에 더욱 취약하다. 같은 규제라도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부담이 커지는 게 일반 원리다. 환경규제 준수 비용의 경우 대기업 대비 소기업 부담이 5.2배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규제 중 상당수는 중소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한국만의 ‘갈라파고스식 규제’가 중소기업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게 현실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토론회에 참석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현장의 애로사항 229건을 담은 ‘규제개혁 과제집’을 전달했다. 이제 정부 규제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인 한 총리가 책임지고 실적으로 답해야 한다. 중앙과 지방의 일선 공무원들이 스스로 불필요한 규제를 발굴해 푸는 ‘적극 행정’이 성공의 관건이다. 대통령과 총리가 아무리 규제 개혁을 외쳐도 일선 행정 현장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헛구호에 그친다. 역대 정부의 규제 개혁이 실패한 주요 원인이다. 코로나19 위기에 이은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와 글로벌 공급망 붕괴 등 산업환경 급변으로 중소기업이 경영 위기에 내몰리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만큼 혁파 속도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