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을 놓고 미·중이 일촉즉발 상태에 돌입했다. 펠로시 의장은 어제부터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한국, 일본 순방에 들어갔다. 대만 방문은 보안 문제를 이유로 함구하고 있지만, 외신들은 방문에 무게를 싣고 있다.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불장난하면 스스로 불에 타 죽게 될 것”이라고 한 데 이어 대만 코앞에서 실사격 훈련에 요격 위협까지 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저지가 1차 목적이겠지만, 실행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미국도 대만 인근에 항공모함을 급파했다.

중국은 전면전 불사 반응을 보이는 명분으로 대만이 자국 영토의 일부라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미 권력 서열 3위인 펠로시 의장의 방문은 대만을 주권 국가로 인정하는 셈이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거스른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오는 10월 시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할 전국대표대회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을 방관하면 시 주석의 리더십이 흔들릴 수 있다. 펠로시 의장이 톈안먼·홍콩 민주화 시위를 적극 옹호했다는 점도 중국의 신경을 거슬렀을 것이다.

펠로시 의장은 대만에 가려는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동아시아 순방 목적을 보면 유추해 볼 수 있다. “동맹과 친구에 대한 미국의 강력하고 흔들리지 않는 다짐을 재확인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대만을 지키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밝히겠다는 관측이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겨냥, 강한 리더십을 보여 떨어지는 민주당의 지지율을 올려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대만을 사이에 둔 미·중 충돌은 언제든지 한반도로 옮겨올 수 있다. 당장 중국은 한국에 추가 배치 금지 등 ‘사드 3불(不)’을 지키라고 협박하고 있다. ‘사드 3불’을 밝힌 문재인 정부가 빌미를 제공했지만, 단순 입장 표명인데도 국가 간 약속이라며 억지를 부리는 것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즉각 “사드 배치는 한·미 동맹의 결정”이라고 반박하면서 사드 문제는 미·중 전략적 대결 구도의 고리가 되고 있다. 대만해협에서 미·중 충돌이 일어난다면 주한미군의 이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북핵 문제가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 그런 만큼 군과 외교당국은 미·중 갈등이 우리 안보에 미칠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비해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춰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