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생명, 자유 그리고 여유
지난 주말 봄을 시샘하는 눈이 내렸다. 이른 아침 눈을 맞으며 인적 없는 근처 산을 오른다. 천지가 조용하다. 하얀 눈 속에 파묻혀 있는 나무에서도 새 생명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생명의 탄생은 봄과 함께 온다. 봄을 알리는 연한 초록의 새 잎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봄은 가을보다 활기차다. 봄에는 어디서나 파닥파닥 생동하는 새 생명의 날갯짓을 볼 수 있다. 생명만큼 소중한 것이 어디 있을까. 이 세상에 하찮은 생명은 없다. 그래서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축복받아야 하며 사랑받아야 한다.

생명은 자유와 함께할 때 더욱 의미가 있다. 자유는 공기와 같다. 들이쉬고 내쉬는 숨과 맞닿아 있다. 그만큼 생명과 밀접하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 자유는 지천명(知天命)이다. 하늘의 뜻을 따라 거스르지 않는다. 가고 싶으면 가고 쉬고 싶으면 쉰다. 속박받지 않고 마음이 취하는 대로 흐른다. 지극한 자유는 막힘이 없다. 막히면 그저 돌아갈 뿐이다.

자유는 무엇보다 자신을 스스로 가둠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몸은 산속에 있어도 마음이 저잣거리를 헤매면 자유롭지 않다. 몸은 자유로우나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는 삶의 모든 과정을 남김없이 ‘깊이 그리고 고요하게’ 관조함에 있다.

여유는 또 다른 차원이다. 알면 여유가 생긴다. 모르는 것은 항상 불안하다. 여유는 비움에서 나온다. 비운다는 것은 내려놓음이 아니라 아예 의식하지 않음이다. 모든 것은 의식함에서 비롯된다. 바람이 스쳐 간 대나무 숲에는 소리가 남아 있지 않고 기러기 날아간 호수에는 그림자가 없다. 살다 보면 때로는 직진만이 능사가 아닌 것을 안다. 쉬어 가는 것도 배운다. 빠르다고 생각한 길이 때로는 더 늦을 때가 있다. 약은 고양이가 밤눈이 어둡다. 여유는 이순(耳順)이다. 순리대로 생각하고 행한다. 그래서 여유는 모르는 누구를 마주치더라도 한두 마디 가볍게 인사를 건넬 수 있게 해 준다. 무엇보다 어디서든 ‘현재’에 머물러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팀 로빈슨 분)는 교도소 소장 방에서 한 뼘의 여유를 즐긴다. 우연히 발견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LP판 위에 전축 바늘을 태연하게 올려놓는다. 혹독한 교도소 생활이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짧은 여유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여유는 시간과 장소를 차별하지 않는다. 한 조각 햇빛과 한 줄기 바람의 ‘순간’을 즐길 줄 안다. 할 수 있어도 하지 않고 할 수 없어도 실망하지 않는다. 삶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한바탕 껄껄 웃고 흘려보낸다. 잊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서두르지도 않는다. 여유는 강인함에서 나온다. 뱃심이 없이는 결코 즐길 수 없다. 유약승강장(柔弱勝强壯)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것이 힘세고 단단한 것을 이긴다. 마치 “구름에 달 가듯이” 여유 있게 흘러갈 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