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원자력 발전과 천연가스에 대한 투자를 환경·기후 친화적인 ‘녹색 분류체계(taxonomy)’에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외신들이 어제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이와 정반대로 작년 말 원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서 제외했다. 원전 복귀가 세계적 추세임에도 탈원전을 무슨 종교 교리인 양 떠받드는 정부의 아집으로, 국제적 ‘원전 왕따’를 자초해 스스로 경쟁력을 갉아먹는 형국이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31일 원전을 녹색 분류체계에 포함한다는 ‘EU 택소노미’ 초안을 27개 회원국에 발송했다. EU는 이달 22일께 초안을 토대로 최종 결정할 예정인데, 이번 초안엔 프랑스 원전과 독일 천연가스가 일종의 빅딜 형식으로 포함돼 채택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녹색분류체계는 특정 기술이나 산업활동이 탄소중립을 위한 친환경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다. 앞으로 금융권이나 연기금들이 택소노미를 ‘녹색금융’의 기준으로 삼게 되는데,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면 자금 유치나 금리 조건 등에서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작년 11월 말 기준 국내에서 발행된 녹색채권은 전년 동기 대비 13배 급증한 12조4950억원에 이른다.

원전이 EU 택소노미에는 포함되고 ‘K-택소노미’에선 제외된다는 것은 원전 수출에 커다란 악재가 될 것이 자명하다. 현재 동유럽에서 원전 수주 경쟁을 벌이는 한국 입장에선 프랑스 같은 유럽 경쟁국에 비해 자금조달 경쟁에서 뒤처지게 될 게 뻔하다. 신뢰도에도 큰 타격이 우려된다. 원전은 100년 가까운 생애 주기를 가져 유지관리가 중요한데, 스스로 원전을 배제한 나라에 자국 원전을 맡길 국가가 얼마나 될까 싶다.

정부의 발표 시점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환경부는 작년 말 택소노미를 발표하면서 EU의 원전 포함 여부를 보고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EU 결정이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서둘러 발표부터 한 것은 대선을 앞두고 대못박기로밖에 볼 수 없다.

국민여론의 70%가 원전 가동에 찬성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탈원전 전면 폐기를 공약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감(減)원전’ 공약도 지금의 탈원전 기조를 다소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차기 정부는 국제 흐름에 배치되는 원전 배제 K-택소노미부터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