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K반도체 초파격적 지원’ 약속이 결국 빈말로 드러났다.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지자 여당이 반도체 같은 전략산업을 지원하겠다며 만든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일명 반도체특별법)’ 처리가 해를 넘겼다. 부처 이견으로 질질 끈 데다 대선에 정신이 팔린 여야의 무관심이 빚은 결과다.

지난해 4월 여당이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특별법을 제정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야당도 그 취지에 동감해 조속한 입법이 기대됐다. 그러나 여당은 위원회만 만들어 놓고 대선 경선에 매몰돼 ‘나 몰라라’ 했다.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6개월이 지나서야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이번엔 ‘예타 신속처리’ 등을 놓고 부처들이 샅바싸움을 하느라 좀체 진전이 없었다.

더욱이 기업이 절실하게 요구해온 ‘반도체학과’ 증설을 위한 수도권 대학정원 규제 완화, 주 52시간제 탄력 적용 등은 다 빠졌다. 파격 지원은커녕 ‘반쪽 법안’에 그친 것이다. 법안 처리가 미뤄진 데 대해 여야는 “야당이 아무 이유도 없이 반대하고 있다” “정부와 민주당의 입장 차이 때문”이라고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바쁘다. 반도체산업은 사활을 건 ‘국가 대항전’으로 불릴 만큼 미국 일본 중국 대만 등이 대대적 지원에 나서고 있다. 새해에도 미국이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고삐를 더욱 조일 것으로 예상되는 다급한 상황인데도 한국은 언제까지 기업들만 ‘나홀로 사투’를 하게 할 건지 답답하다.

반면 여야는 표에 도움이 될 만한 현안에는 ‘번개’처럼 나선다. 국회의원·지방선거 출마연령 하한기준을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낮춘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와 30일 법사위, 31일 본회의를 일사천리로 통과됐다. 청년 표심을 의식한 여야가 의기투합한 것이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법안도 경영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동계 표를 의식한 국민의힘이 찬성으로 돌아서 ‘속전속결’ 태세다.

여야가 소상공인·자영업자 ‘선(先)손실보상’을 외치자 정부는 발빠르게 나서 설연휴 전 지급을 발표했다.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여당의 최대 30조원 규모 주장에 야당도 “신속 검토” 입장이어서 2월 편성 가능성이 커졌다. 선심 경쟁에는 여야가 한 몸이다. 코로나로 고통받는 자영업자 지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여야가 표심 구애에 기울이는 노력의 10분의 1만이라도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에 쏟는다면 기업들이 이토록 절망하진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