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수출이 6445억4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증가율이 전년 대비 25.8%로 11년 만에 가장 높았다. 정부의 규제일변도 정책, 코로나 쓰나미, 글로벌 공급망 대란의 한복판에서 기업들이 일궈낸 소중한 성과다. 이에 힘입어 9년 만에 무역순위 세계 8위 자리도 탈환했다. 9대 주요 지역 수출이 모두 늘어 ‘월 수출 600억달러 시대’를 열었고, 무역수지도 13년 연속 흑자다.

‘성장 DNA’를 잃어가던 우리 경제에 찾아온 모처럼 만의 희소식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수출증가율은 곤두박질쳤다. 최근 2년(2019~2020년) 연속 역성장했을 만큼 사정이 심각했다. 2019년 수출 증가율이 -10.4%에 달했던 데서 보듯 코로나 핑계를 대기도 어렵다. 그런 와중에 지난해 수출 급반등은 성장엔진이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든든한 신호다.

작년 수출지표는 내용 면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15대 수출품목이 모두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는 등 전 품목이 고루 늘었다. 반도체 기계 석유화학 자동차 철강 등 전통 효자품목뿐 아니라 바이오 배터리 등 신산업 품목의 약진이 두드러진 점도 반갑다. 고부가 제품인 시스템 반도체와 OLED 수출은 역대 최대이고, 중소·중견기업이 주력인 농수산식품 화장품 등 소비재 수출도 급증했다.

반가운 수출 회복세와 달리 ‘숟가락 얹기’에 바쁜 정부 행태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급반등했다지만 작년 수출액은 문 정부 출범 첫해보다 12%가량 많을 뿐이다. 이전 정부에선 월 수출 100억달러 증가에 소요된 기간은 각각 2년(300억달러→400억달러) 5년(400억달러→500억달러)이었지만 현 정부에선 8년(500억달러→600억달러)이 걸렸다. 사정이 이런데도 대통령부터 부총리, 장관까지 나서서 “한국 무역이 새 역사를 썼다”며 자화자찬에 바쁘다.

기업들이 힘겹게 재가동시킨 수출엔진이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민관이 다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무역협회 한국경제연구원 등은 이구동성으로 올해 수출 증가율이 대폭 둔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경과 서울대 공대가 ‘글로벌 퓨처테크’ 현장을 둘러본 결과 AI반도체, SMR(소형모듈원자로), 배터리, 플라잉카 등 ‘게임 체인저’로 유력한 9개 미래기술의 국내 생태계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 “완전한 경기회복에 앞장서겠다”며 공수표만 날리지 말고, 제발 기업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