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소비자물가가 작년 10월에 비해 3.2% 올랐다. 상승률이 9년 9개월 만의 최고란 점에서 거의 ‘쇼크’ 수준이다. 체감물가(생활물가)는 4.6%로 더 뛰었다. 석유류(27.3%)부터 축산물(13.3%), 빵(6.0%) 등 가공식품, 전기료(2.0%), 전셋값(2.5%)에 이르기까지 오르지 않은 게 없다. 인플레이션의 ‘검은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일상 곳곳에 드리우는 모습이다.

정부는 비교시점인 작년 10월 통신비 지원(2만원)에 따른 기저효과가 영향을 미쳤고, 이를 제외하면 9월과 비슷한 ‘2.5% 상승’이라고 파장 축소에 급급한 모습이다. 하지만 원자재값 급등, 글로벌 공급망·물류 대란, 보복소비 등 인플레 위험요인이 가득하다. 물가상승으로 임금인상 요구가 더 커질 것이다.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인상도 불가피하다.

불안한 구석은 또 있다. 미국 일본 독일 등 주요국들은 코로나 시기에 늘린 정부예산을 내년엔 10% 이상 줄이고 있는 반면, 한국은 정반대다. 내년 예산안(604조4000억원)도 600조원을 이미 넘겨 빗장이 활짝 풀렸다. 재정 확대는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재촉하게 된다. 이런 기조가 계속된다면 2029년 국가채무가 2029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란 국회 예산정책처 경고까지 나왔다. ‘GDP 대비 40% 선’을 놓고 논란을 빚었던 국가채무비율이 8년 뒤 75.2%로 급상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여당 대선후보는 ‘전 국민 재난지원금 1인당 100만원’을 주장하고, 여당 대표는 추가세수 10조원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맞장구친다. 이미 과도한 재정지출로 한국 국채금리는 국가신용등급 최상위국(AA급 이상) 중 가장 높은 수준이 됐다. 정부 스스로 위기를 잉태하고 있는 마당에 선거를 앞두고 ‘돈 더 풀자’는 주장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여당 후보는 “국민 여론을 따르는 게 관료가 할 일”이라고 압박하고, 예산권을 기획재정부에서 총리실로 이관시키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는다. 갈수록 엄혹해지는 글로벌 경제환경 속에 위기대응과 나라곳간 지킴이 역할이 거추장스럽다는 것인가. 정치인들이 선거로 권한을 위임받는다 해도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결정할 중대사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전문 관료, 한국은행, 사법부 등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헌법·법률에 명시한 이유다. 선거가 나라 미래를 좀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