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금융회사에 왜 공적 역할을 요구하나
금융산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특이한 사실이 눈에 띈다. 유달리 금융의 공적 역할을 강조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정치인 중에 이런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금융회사가 공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금융회사에 떠넘기려 한다. 분명 금융회사도 주식회사로 주주 이익을 최우선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공적 역할을 하도록 요구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금융회사의 공적 역할에 대해선 사실 금융회사에서 수십 년 종사한 사람들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금융회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특강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정부 간섭이 심한 이유가 뭐냐고 질문하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금융회사에 대한 정부 개입이 정당화되는 이유는 금융회사가 숙명적으로 국민의 세금에 기반한 재정 지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금융회사가 위기를 겪을 경우 정부는 공적자금을 제공해 구제한다. 다른 산업은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을 정부가 구제하지 않지만, 금융산업이 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예외 없이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제에 나선다. 금융산업의 부실을 방치하면 국민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부(-)의 외부효과라고 부른다. 금융산업은 실물경제의 소비, 투자 등 경제활동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금융산업이 붕괴하는 경우 자신뿐 아니라 국민 경제 전체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이런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 바 있다.

정부는 금융회사가 파산해 국민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금융회사를 감독하고 간섭할 권한을 갖는다. 하지만 정부 지원을 받는 대상은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 쉽다. 성공해서 이윤이 나면 자신의 몫이지만 실패해서 부실이 생겨도 정부가 해결해 준다면 이들은 위험 추구에 나선다. 따라서 다른 산업과 달리 금융산업에 특화된 감독기관인 금융감독원을 설치해 금융회사가 지나친 위험 추구를 하지 못하도록 감독해야 한다.

한편, 금융회사와 금융소비자 간에는 현격한 정보 차이가 있으므로 정보상 열위에 있는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 개입이 정당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소비자보호 문제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산업에도 해당되므로 금융산업에만 적용되는 논리라고 보기 어렵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부 개입도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 부도 가능성을 낮추도록 요구하는 선에서 정당화된다. 금융감독을 통해 금융회사가 건전성을 유지하도록 강제함으로써 세금에서 충당되는 공적자금의 사용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 정부가 금융회사에 개입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금융 건전성과 관련 없는 정부 개입이 부당하게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서민금융을 생각해 보자. 금융회사들이 특별히 서민이나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을 우대할 이유가 무엇인가? 비교하자면 자동차 회사에 서민을 대상으로 한 특별 가격을 책정하라고 요구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서민과 저신용자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면 이는 응당 정부가 재정을 이용해 감당해야 할 책무다. 그럼에도 정부는 금융회사의 공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정부가 담당해야 할 책무를 금융회사에 미루는 경우가 많다. 사실 서민금융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그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금융감독의 취지를 훼손하는 데도 말이다.

금융회사의 공적 역할은 위기 시 공적자금이 지원되지 않도록 금융회사에 건전성을 요구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점을 이해한 바탕에서 금융감독이 이뤄져야 금융회사로 하여금 불필요한 공적 역할을 강제하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비상시 공적자금을 제공하니까 정부 대신 이런저런 일을 하라는 식은 곤란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금융회사가 창의적 노력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질 리 없다.

최근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수장이 모두 교체됐다. 새로운 금융당국은 금융회사 운영에 개입해 공적인 역할을 요구할 경우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접근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