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나이 들어 더 멋있는 사람
나무는 해마다 제 몸속에 나이테를 새긴다. 나이테가 늘어가는 만큼 연륜이 쌓이고 내면이 단단해진다. 늦가을 잎과 열매를 떨굴 때에는 자세를 낮추고 겸손해진다. 미국 시인 조이스 킬머가 ‘나무보다 더 아름다운 시를/내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했듯이, 오래된 나무 아래에 서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사람은 나이테 대신 주름살을 새기며 나이를 먹는다. 나이테가 몸 안의 주름이라면 주름살은 몸 밖의 나이테다. 자애로운 미소와 웃음에서 나온 주름은 아름답고 품격 있다. 나이 들수록 더 멋진 사람들은 척박한 땅에서 자라 울창한 숲을 이룬 나무와 닮았다.

그제 90세로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숀 코너리도 그랬다. 스코틀랜드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우유배달원, 벽돌공 등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다 32세 때 첩보영화 시리즈 ‘007’의 1대 제임스 본드 역할로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007’ 주연을 일곱 번이나 맡았지만 변신을 위해 끝없이 노력했고, 57세 때 ‘언터처블’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늘어나는 주름과 대머리를 감추지 않고 경륜의 대명사로 여겼다. 스코틀랜드 독립을 열렬하게 지지하기도 했다. 이런 면모로 59세에 피플지의 ‘생존 인물 중 가장 멋진 남자’에 선정됐다.

‘세기의 미인’ 오드리 햅번은 은막을 떠난 뒤 아프리카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으로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1992년 암 투병 중 소말리아에서 아픈 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던 그의 잔주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이테’였다. 그녀가 죽기 1년 전 아들에게 들려준 샘 레벤슨의 시처럼 ‘그대 손이 두 개인 이유는/하나는 자신을 돕기 위해, 하나는 남을 돕기 위해’라는 걸 몸으로 보여준 사례다.

동물행동학자 제인 구달은 ‘침팬지의 어머니’로 일생을 야생동물과 함께 숲에서 보냈다. 대학 갈 돈이 없어 케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그녀의 노년은 젊은 시절보다 더 숭고하고 경외롭다.

KFC 창립자 커넬 샌더스는 600번 이상 실패를 이기고 65세에 첫 체인점을 열었다. 전설적인 야구선수 베이브 루스는 718개의 홈런을 치는 동안 삼진아웃을 1330번이나 당했다. 미켈란젤로도 팔순에 성베드로 성당 천장을 어떻게 장식할지 고민했다. 나이 들어 더 멋있는 사람들은 숱한 질곡을 겪었다. 그 속에 내면의 나이테와 외면의 주름살이 함께 배어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