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자가 불과 1주일 새 서른 명을 오르내리고 있다. 예년에는 한 해 평균 2명 남짓이던 사망자 수가 올해는 하루 평균 5명으로 말 그대로 폭증세다. 어제 하루에만 20여 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등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일로다.

접종 포기자가 속출하고, 접종자들은 마치 사다리타기나 복불복 게임에 참여한 것처럼 마음을 졸여야 하는 상황이다. 백신 접종의 주요 목적이 ‘기저질환 보유자 보호’임에도 정작 기저질환자들은 무서워서 접종을 포기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국정감사장에서 “정말 죄송스럽다”고 사과했다. “생산부터 전 과정을 면밀히 점검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보건당국 행동은 정반대여서 혼란스럽다. 의사협회가 자체적으로 접종 1주일 중단을 결정할 만큼 사태가 심각하지만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접종과 사망이 연관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접종 지속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독감 사망자만 한 해 3000명에 달하는 만큼 기저질환자들은 반드시 접종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동의하기 힘들다. 진행 중인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상징후가 빈발하고 있어서다.

건강한 17세 고교생이 피해자가 되고, 매년 독감 백신을 맞아온 사람이 제 발로 걸어가 접종받은 뒤 구토와 호흡곤란에 시달리다 사망한 사례들에 대해 질병청은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또 해외 백신 사망자는 0명인데 한국만 피해자가 급증세다. ‘이해 불가’한 상황이 지속되는데도 “상관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것은 무책임한 자세다. 일단 접종을 중단해 상황 악화를 막고 백신과 사망의 무관함을 확인한 뒤 접종을 재개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미 ‘상온 노출’과 ‘백색입자’ 소동이 있었던 만큼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과학하는 올바른 태도다. ‘우리 조사로는 문제없다’는 폐쇄적 자세에서 벗어나 백신 제조 및 유통 과정의 오염 가능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에 귀를 열어야 한다. 보건당국이 왜 이렇게 뭔가에 쫓기는 듯 백신 접종을 밀어붙일까 하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1시간보다는 더 잔다”는 정 청장이 좀 더 숙면을 취한 뒤 맑은 정신으로 자문자답해 볼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