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오늘 문재인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513조5000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 들어간다. 내년 예산안은 올해보다 43조9000억원(9.3%) 늘어나 사상 처음으로 500조원을 넘는 ‘초(超)슈퍼예산안’이다.

내년 예산안 규모가 이렇게 커진 것은 정부·여당의 확장적 재정정책에 기인한다. 정부·여당은 미·중 무역전쟁, 세계 경제 침체,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민간의 투자와 소비를 견인할 재정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안 쓰임새를 보면 재정의 마중물 역할을 통한 성장 잠재력 제고와 거리가 있는 사업이 적지 않다. 예산 증가분 47%가 일회성·경직성이 강한 노동과 보건·복지 분야에 집중돼 있다. 단기 노인 일자리만 양산했다는 지적을 받는 일자리 예산은 역대 최대인 25조7000억원으로 21.3% 늘었다. 체육관 등 ‘생활형 SOC(사회간접자본)’와 지역 민원 사업도 대거 포함됐다. 남북한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올해보다 10.3% 늘어난 남북협력기금(1조2200억원) 규모도 논란거리다.

‘일본식 장기불황’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에서 시급하지도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곳에 혈세가 뿌려진다면 여야 모두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여당은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복지 퍼주기 등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선심성 예산 불가’를 외치는 자유한국당 등 보수 야당들도 ‘말 따로 행동 따로’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정치권이 여야를 떠나 ‘쪽지 예산’ 끼워넣기 등 물밑 흥정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포퓰리즘 경쟁’을 벌여온 게 지금까지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라살림이 당리당략과 정치적 흥정거리로 전락하는 구태를 벗어야 한다. 국회는 예산이 꼭 필요한 곳에 쓰이는지 엄격히 심의해야 한다. 선거를 의식한 퍼주기가 경제 살리기 효과는 없이 재정만 거덜 낼 뿐임이 숱하게 입증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