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국회 입법 없이 시행규칙이나 고시 개정만으로 가능한 유연근무제 확대를 건의하고 나섰다. 탄력근로제 확대 등의 ‘주 52시간 근로제’ 보완입법이 국회 논의단계에서부터 지연되고 있는 만큼, 산업현장의 어려움 해소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에 정부가 적극 나서달라는 요청이다.

경총은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로 ‘인가 연장근로제’와 ‘재량 근로시간제’ 확대를 꼽았다. 인가연장근로는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시적으로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제도다. 경총은 근로기준법 시행규칙에서 정하는 인가연장근로 허용범위에 ‘탄력근로제·선택적 시간근로제로 대응할 수 없는 경우’와 ‘일시적으로 불가피한 경우’를 추가할 것을 주문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식품·목재를 제외한 대부분 품목의 수급에 비상이 걸린 만큼 시의적절한 제안으로 보인다.

‘재량근로 시간제’는 사용자가 구체적으로 지시하기 어려운 업무의 수행방법 등을 근로자 재량에 맡기고, 노사합의로 ‘소정 근로시간’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특허 신상품·신기술 연구개발 등 ‘전문형 업무’에만 적용 중인 범위를 고용노동부 고시 개정을 통해 경영기획·재무 등으로 확대해달라는 게 경총 요청이다. 따져보면 이런 건의들은 ‘국난’으로까지 불리는 경제위기가 아니어도 이미 도입됐어야 할 것들이다. ‘전쟁’ 상대방인 일본은 융통성 있는 인가연장근로제와 재량근로시간제는 물론이고, 올 들어선 고소득 전문직을 근로시간 제한 대상에서 배제하는 ‘고도프로페셔널제’도 도입했다.

대기업 연구소조차 초저녁이면 불이 꺼지는 상황에서 전쟁을 이길 방도는 없다. 내년에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면 GDP와 임금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줄을 잇고 있다. 조속한 후속 입법이 근본해법이지만, 그에 앞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충격 완화조치부터 서둘러야 한다.